9 우리 모두는 소설가, 이야기를 지어낸다

무의식적 작화

by 윤소희

단편소설: <스마트한 당신만 읽으세요> 9화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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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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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 모델 만들 때마다 옆에 있던 인도인 친구 생각 안 나? 모델 다 인도 애가 한 거야. 김, 그 새끼가 그걸 다 어떻게 혼자 했겠냐?
그러고 보니, 숙제할 때나 시험 기간마다 어디로 사라졌다 오고 그랬던 것도 같네.
다시 기억났는데, 그 새끼 학교에 있을 때도 좀 싸가지 아니었냐? 저 잘났다고 유학생 모임에도 잘 안 나오고, 이렇게 막 눈 아래로 깔고 사람 무시하고.


김의 동기가 눈알을 굴리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자 술자리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됩니다.


한 때 ‘분석의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김은 술자리에 모인 동기들 대화중에 점점 바닥으로 내려와 인간 말종이 되어 갑니다. 재미있는 건 동기들 머릿속에 남아 있던 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점점 사라지고, 김이 인간 말종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기억들로 재편집되는 과정입니다. 뭐,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존재니까요. 끊임없는 무의식적 작화증(confabulation)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왜 그랬는지 거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의 이유를 나름대로 자신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불명확한 부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을 섞어 이야기를 지어 내는 거죠.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소설가인 겁니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기억도 픽션인 거고….


그나마 김에게 몇 번 주워지던 인터뷰 기회도 머지않아 뚝 끊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은 마음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어쩌다 누군가가 취직 기회를 알려주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했거든요. 더 이상 탈출구는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는데, 막상 탈출구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장밋빛 미래’ 따위 사전에서 사라지고, 아무것도 소용없다고 믿는 허무주의자가 된 거죠. 많은 매 맞는 여성, 인질들, 그리고 장기 복역수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져도 거부하는 것도 김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사로잡힌 거죠. 이미 체념했는데, 자포자기했는데, 생뚱맞게 ‘희망’이라니….


helpless.jpg


우리가 평생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외치는 성적으로 상위 0.1% 안에 드는 김을 당신은 지금 바보, 멍청이라고 여유 있게 비웃을 겁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마, 당신은 김 이야기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리석은 자의 결말을 꿰뚫어 보고 있었겠죠. 그래서 당신이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당신이 스마트하다는 걸 눈치챘던 겁니다. 당신이라면 착각에 빠져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절대로, 절대로 안 할 테니까요. 당신은 환경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도록 매사에 꼼꼼하게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겠죠.


잠깐! 당신은 특별히 스마트하고 신중한 소수의 귀중한 독자니까 당신한테만 비밀을 공개합니다.


*글의 목적을 위해 전략 컨설팅의 프로젝트와 컨설턴트에 관한 이야기나 묘사가 과장되게 꾸며져 있습니다. 실제와는 전혀 다른 소설임을 기억해 주세요.


(TO BE CONTINUED)


10화(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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