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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30. 2020

빵을 먹는 것보다 고를 때의 설렘이

빵 고르듯 살고 싶다

빵을 좋아하지만, 빵을 먹는 것보다 빵집에 가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빵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갓 구운 빵 냄새만 맡아도 설렌다. 깨끗한 테프론 시트가 깔린 쟁반을 왼손에 그리고 집게를 오른손에 들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 빵집 안을 천천히 누비며 빵을 고르는 시간이 좋다.  


저 빵은 못 보던 빵이네. 이름이 뭐지?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입에 쏙 넣으면 어떤 감촉일까? 

 

빵을 고르는 순간을 몹시 즐기지만, 막상 빵집을 나설 때는 대개 비슷한 종류의 빵을 들고 나온다. 게다가 사온 빵을 바로 먹지 않고 냉동실에 처박아 둘 때도 있다. 막상 먹고 싶던 빵을 실제로 먹을 때 시들해지기도 하지만, 무슨 빵을 먹어볼까 고민하며 빵을 고르는 그 시간만큼은 언제나 설렌다. 


빵을 고르는 시간만큼은 언제든 설렌다


얼마 전 카페에 갔다가 벽 한 면을 그득 채우고 있는 문장에 눈길이 갔다.  

Goals are dreams with deadlines.

목표는 데드라인이 있는 꿈. 언제까지 성취하겠다는 명확한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실제 꿈을 향해 달려 나가지 않으면 그저 꿈꾸는 걸로 그치게 된다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쩐지 조금 슬퍼졌다. 모든 꿈을 반드시 성취해야만 멋진 삶일까. 그냥 꿈을 꾸는 것만으로는 정녕 안 되는 걸까.  

 

그토록 나를 설레게 했던 꿈도 막상 이루고 나면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가슴 터지는 감격이 없거나 있어도 몹시 짧게 스쳐 갔다. 꿈은 이루기 직전까지만 가슴 뛰고 설레는 건 지 모른다. 빵집에서 마주친 달콤한 케이크와 먹음직한 빵들처럼. 


얼마나 많은 빵들을 먹어봤는지 셈하고 비교하는 삶은 얼마나 비루한가. 그저 왼손에 쟁반을, 오른손에 집게를 들고 다양한 빵들 사이를 천천히 누비며 빵을 고르듯 살고 싶다. 생크림이 듬뿍 올려진 케이크를 지나, 한 입 베어 물면 입술 전체가 초콜릿 가루로 범벅이 될 초콜릿 빵을 지나 결국 바게트 하나를 사 들고 집에 돌아올 지라도. 아주 가끔은 눈으로만 음미하던 낯선 빵을 사들고 와 맛보기도 할 것이다. 그 빵의 이름을 아직 모르기에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빵집에 갈 수 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루지 못한 꿈들이 나를 설레게 했으면 좋겠다. 빵집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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