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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03. 2020

캐치볼,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아빠와 아들이 캐치볼 하는 시간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캐치볼을 하는 시간. 작은 공을 던지며 주고받을 때마다 공이 지나가는 자리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형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막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더 이상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과 장소로 이동되는 걸지 모른다고. 캐치볼을 하는 시간, 곁에 서 있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닿을 수 없는 저 너머 어디로 그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빠와 아들이 캐치볼


부자의 캐치볼 장면은 미국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클리셰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서먹했거나 갈등이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하면서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고 서서히 화해해가는 장면. 그저 작은 공을 던지며 주고받을 뿐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들은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성적인 언어로 하는 대화보다 더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교감을 이루며. 


그 교감은 어디서 오냐고 물었을 때, ‘탁’ 소리와 함께 상대가 던지는 공이 손에 들어와 잡히는 순간의 감촉, 그 묵직한 느낌에서 온다는 답을 들은 적 있다. 그 답을 듣는 순간,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떠오르며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마들렌과 함께 하는 티타임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디서 그것을 포착해야 할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향기, 맛, 소리, 촉감 등 감각이 기억과 결합되면 흩어지고 분절되었던 시간을 하나로 이어준다. 말하자면 ‘탁’ 소리와 함께 공이 손에 닿는 촉감이 잊고 있던 자신과 또 상대와의 관계를 순식간에 이어주는 것이다. 눈앞에는 부쩍 커버려 말도 잘 안 하려는 아이가 서 있지만, 오래전 더 작은 키로 서툴게 공을 놓치던 아이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던지며 깔깔거리고 웃던 아이, 조금씩 주고받는 횟수가 늘어나며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아이 등 다른 시간의 아이가 그 순간 하나로 이어져 함께 한다. 흩어진 기억을 모아 함께 그들만의 이야기를 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작고 단단한 공을 주고받으며 흩어지는 시간을 하나로 이어가는 모습이,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아름답고 단단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랑하는 세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말로 하는 대화로 초대하기보다는 왼손에 글러브를 끼고 그 앞에 서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빠와 두 아들이 번갈아 캐치볼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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