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칭다오 격리의 공포

중국 집중격리 후유증

by 윤소희

최근 칭다오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12명 정도. 그 때문에 전국이 비상이다. 아이 학교에서도 메일이 날아왔다. 9월 27일 이후 칭다오에 갔던 사람이나 갔던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모두 핵산 검사를 하고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고. 우리가 칭다오에서 베이징에 들어온 날짜는 9월 26일. 하루 차이로 겨우 살았다. 하루만 늦었으면 우리 가족은 다시 핵산 검사를 하고, 격리에 들어가는 등 추가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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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인천-칭다오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들어와, 칭다오 모 호텔에서 9월 25일까지 집중 격리를 했다. 네 번의 코로나 핵산 검사를 해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고 9월 25일에 격리 해제되었다. 칭다오-베이징 비행기 연착으로 하루를 넘긴 9월 26일 새벽에 베이징에 도착했고, 9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두 아이와 나는 격리 기간 중 면역력이 떨어져 집에 돌아오자마자 앓아눕게 된다. 편도 결석, 눈 다래끼, 눈 알레르기 등으로 시작해서 감기 몸살을 내내 앓았다. 결국 집에서 꼼짝 못하고 다시 '자각 격리'를 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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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마다 걸리던 대수롭지 않은 감기가 코로나 시대에는 거의 '역병' 취급을 받는다. 예전에는 열로 치지도 않던 37도 이상 미열만 나도 가정의학과나 이비인후과 등 외래 진료가 불가능하다. 37도 이상 열이 나는 순간 열환자들만 받는 '발열 클리닉'으로 가야 한다. (허무지아 병원에 예전 가정의학과 건물을 '발열 클리닉'으로 운영)


미열조차 없이 기침만 남았을 때도 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일단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하고, 열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다. 예약한 병원에 도착하니,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다. 외래 진료가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게 조작을 해놓은 것이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 환자인 걸 확인하고서야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준다.


빨리 낫기 위해 수액을 맞았다. 하지만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아이는 항생제를 견디지 못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심지어 목 안까지 두드러기가 나 호흡곤란이 올 뻔한 상황이었다. 링거를 맞기 전 피부에 먼저 테스트를 했고, 아무 문제가 없어 맞기 시작했는데, 맞으면서 아이가 간지러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이미 테스트를 했고 문제가 없었기에 약과는 관계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링거를 다 맞고 온몸이 벌겋게 된 걸 의사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다급하게 항히스타민제 주사를 놓아주었다. 금세 가라앉지 않아 약을 먹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아 항히스타민제를 넣은 링거를 다시 맞았다. 같은 항생제를 바로 몇 달 전에도 그 병원에서 처방받은 적 있고, 멀쩡했던 아이가 이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쇠약하고 예민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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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이는 어지럽고, 배가 아프고, 코와 귀가 꽉 막혀 숨을 잘 쉴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코로나’고, ‘겨우 2주 격리’지만 연약하고 예민한 아이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전쟁처럼 끔찍하고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격리의 공포와 고통. 집에 왔으나 우리는 여전히 격리 중이다. 여전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 수많은 사람들이 격리 해제 후 멀쩡한데 유난을 떤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강하고 건강한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약한 이의 상처는 더 심해지고, 마음이 위축되어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언제쯤 진정 이 격리가 끝날까. 언제쯤이면 놓여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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