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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13. 2021

분사된 유백색 정액 방울이 난분분하는 하늘

베이징 하늘에 쏟아지는 '꽃가루 폭탄'

4월의 어느 날,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흐릿하게 보이는 게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전 한때. 거리에는 꽃가루가 몹시 날리고 있다. 도대체 어떤 나무, 어떤 꽃에서 떨어져 나온 꽃가루일까? 이 도시 가로수 조경을 담당했던 이가 봄마다 무시무시하게 흩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사형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믿거나 말거나 확인 안 된 소문이지만, 봄마다 꽃가루 때문에 병원에 실려가는 수많은 알레르기 환자들. 수많은 가로수들이 뽑히고 다시 심기는 장면을 상상하다, 어쩌면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방에 처박아둔 스마트폰을 꺼내 꽃가루가 흩날리는 거리 사진을 찍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온통 흩날리는 꽃가루뿐이었는데, 정작 찍힌 사진에는 꽃가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초등학교 교실 청소 시간, 내 눈에만 보이던 흩날리는 먼지들이 떠올랐다. 다른 아이들은 청소 시간 내내 자유롭게 숨을 쉬며 장난치고 떠드는데, 나만 손바닥으로 코를 덮은 채 숨을 참느라 고통스러웠던 시간. 꽃가루는 어쩌면 그때의 먼지들과 닮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고 공기 흐름과 떨림을 그대로 반영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꽃가루는 낡은 창고에서 발견되는 먼지 뭉치 같기도 하고, 작게 떨어져 나온 솜뭉치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눈에 보이지 않던 미세한 먼지들에 비하면 수백, 수천 배는 더 클 것이다. 수백, 수천 배는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보다 훨씬 커진 나는 흩날리는 꽃가루를 보며 더 이상 코와 입을 막지 않는다. 크기의 변화는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미 몸소 증명해 보였듯이…  


꽃가루가 꽃의 수술 꽃밥에서 나온 생식세포란 사실을 떠올리니 갑자기 비릿한 냄새를 맡은 듯 어지러워진다. 공중에 부유하는 유백색 정액 방울들이라니...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줄 이름도 얼굴도 모를 여인을 향해 하늘에 정액을 분사하는 사내들과 흩날리는 정액 방울에 맞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이를 낳는 여인들. 대놓고 사랑을 나누느라 난분분하는 4월 하늘, 코와 입 대신 눈을 가려야 할까 보다. 


(Source: 인사이트 뉴스)


*중국 당국은 1970년대부터 공기 오염을 줄이고 녹화 사업을 목적으로 포플러와 버드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나무들에서 매년 4월부터 5월까지 대량의 솜털 모양 꽃가루가 나와 현재는 골칫덩이가 된 상태. 중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시내에서만 28만 4천 그루의 나무에서 매년 그루당 1kg가량의 꽃가루를 뿜어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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