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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0. 2021

죽도록 싫고 지긋지긋한 그 녀석을 떼어 놓는 방법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그림자를 벗어버리려고 애쓴 적이 있다.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찮았다. 내게 꼭 붙어 있는 주제에 나를 별로 닮지도 않은 그 녀석이. 가끔 그림자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만 보고는 내 그림자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녀석은 사진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림자_ 웨일스에서


어쨌거나 그 녀석을 떼어버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높이뛰기였다. 하늘을 향해 껑충 날아오를 때, 나는 잠시 그 녀석과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떠올랐구나 인식할 겨를도 없이 추락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뛰어오를 때마다 그 녀석을 떼어놓을 수는 있었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았다. 더구나 잠시 뛰어올랐다 주저앉을 때 그 녀석은 내게 더욱 찐득하게 들러붙곤 했다. 


source: Pixabay


다음으로 한 일은 빛을 없애는 것이었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는 당연히 사라질 테니.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기쁨은 아주 잠시. 나는 나 자신의 털끝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 나 역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니 세상 전체가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내가 사라지고 그 녀석만 남는 게 두려워 아주 희미한 불빛 하나라도 허락하면, 그 녀석은 금세 빛을 따라 일렁이며 내 곁에 바짝 붙었다. 


source: Pixabay


귀찮은 녀석을 떼어버리지 못하고 끙끙대던 어느 날, 나는 그 녀석을 응징하기 위해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녀석을 위해서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그 녀석을 업어다 주는 꼴이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있느라 좀이 쑤시는데, 그 녀석은 혼자서 잘도 움직였다. 긴 몸피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이기도 하고, 다시 길고 두툼하게 늘리기도 하면서. 내 왼편에 붙어 있다 오른편으로 위치를 바꾸기도 하면서. 내가 그 녀석을 가둬두려고 꼼작 않고 있어도, 해를 멈춰버리지 않는 한 그 녀석은 하루 종일 쉼 없이 움직였다. 



그 녀석에 대한 미움이 점점 커지자, 점점 얼굴을 늘 빛을 향해 두는 해바라기가 되어 갔다. 그 녀석을 보지 않으려면 항상 빛을 향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던 것이다. 눈이 너무 부셔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고개를 돌리기 싫었다. 하루는 눈이 너무 시려 발 앞에 놓인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 일이 있었다. 꽈당, 하며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코가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완전히 바닥에 밀착해 엎드리고 있는 내 모습은 흡사 그 녀석에게 바짝 몸을 밀착시켜 끌어안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그 녀석과 온몸을 겹쳐 그 녀석을 끌어안자, 더는 그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아예 하나가 되니, 더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어쩌면 신은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원수를 끌어안고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지긋지긋한 원수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니... 


source: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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