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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8. 2021

가난한 가을의 여린 손목을 붙잡고

점점 뚱뚱해지는 여름과의 숨 막히는 동거를 버티며

빈익빈 부익부는 계절에도 적용된다. 부한 계절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 오래도록 우리 곁에 들러붙고, 가난한 계절은 조금씩 사라져 간다. 사계절 뚜렷하던 우리나라도 이제 여름과 겨울 두 계절뿐, 봄가을은 그 사이에 낀 잠깐의 ‘반짝임'이다. 


매년 예년과 다른 ‘이상 기후’라 말하지만, 절기는 이상하리만치 잘 들어맞는다. 가을로 들어간다는 ‘입추’와 더위가 한 풀 꺾인다는 ‘처서’를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귀뚜라미가 울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단풍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한낮을 보내기 어렵다. 아직은 여름인 것이다. 


미련 많은 여름은 가을이 성큼 찾아왔음에도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들러붙는다. 가을을 오롯이 누리지 못하도록 미적거리고 떠나지 않는 여름. 한동안 가을과 여름의 불편한 동거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오래 뜸 들이던 여름이 떠나고 나면, 가을은 순식간에 그 자리를 겨울에 내주겠지. 


점점 길어지는 여름을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름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더위에 자꾸 내 뇌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만 같아서… 올여름은 특히 코로나를 핑계로 조기 종료된 여행 때문에 더욱 심술이 났다. 어쩐지 올여름은 예전보다 더 끈적끈적 지루하게 흘러간다. 베이징 답지 않게 자주 비가 오고 습한 날씨도 그렇고,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코로나도 그렇고, 할 일을 쌓아두고 하나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그렇고… 


뚱뚱해지는 여름과의 숨 막히는 동거로 점점 허약해지는 가을. 가을의 여린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쥐어 본다.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아. 반짝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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