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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9. 2021

재앙이 몰아닥칠 것 같은 예감*

검은 시절은 검은 시절대로, 분홍빛의 시절은 분홍빛 시절대로

상하이로 출장 간 남편이 가족 위챗 방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목표물이 잘 드러나도록 구도를 잡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거리에서 휙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충 찍은 사진이라 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 생가’라고 농담처럼 부르는 곳. 그곳은 (물론 대출 비중이 훨씬 컸지만) 결혼 후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가진 ‘내 집’이었고, 두 아이가 태어난 곳이다. 어찌 그곳을 잊을 수 있을까. 주변이 많이 변했다 해도 그곳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남편이 보내온 사진


반짝이던 시절이었다. 남편 사업이 점점 확장되며 상을 받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뭐든 꿈꾸는 대로 이뤄질 것 같은 분홍빛 시절. '재앙이 몰아닥칠 것 같은 예감' 따위는 없었다. 아주 작은 얼룩이나 어둠도 없는 맑고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둘째 아이가 돌을 맞기 전, 우리는 ‘아이들 생가’를 잃었고 남편 사업체를 잃었다. 가족처럼 가깝게 여겼던 이들에게도 배신을 당했다. 거의 모든 걸 잃었다. 출국금지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귀띔에 바로 중국을 떠났고, 한국에서 여기저기 얹혀 몇 달을 살았다. 남편이 다시 직장을 얻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 데까지 거의 2년의 시간이 흘렀고,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재앙이 몰아닥칠 것 같은 예감'이라도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너무 많은 걸 잃지 않도록 대비했더라면… 지나고 나서야 몇 번의 전조가 있었고 미리 피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분홍빛 세계 속에서는 볼 수 없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어둠과 얼룩을 필터로 걸러주는 안경을 끼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몰아닥친 재앙은 엄청났고, 우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예감하지 못했기에 재앙이 닥치기 직전까지 찬란한 시절을 보낼 수 있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다시는 흉내 낼 수 없는 찬란한 시간. 


갑자기 날아온 ‘아이들 생가’ 사진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곳에서 맞은 재앙이 아니었다. 오히려 찬란함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지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애타게 기다렸던 첫 아이가 마침내 태어나 정성껏 꾸민 아기방 침대에서 잠든 걸 보던 기억. 두 아이가 기거나 걷기 시작했던 그 첫걸음의 순간. 웃음이 끊기지 않던 찬란한 순간들. 분명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재앙’을 맞은 곳이기도 하지만, 밝고 행복했던 추억의 힘이 더 셌다.  


닥칠 일을 예감하고 피할 수 있는 건 분명 지혜이겠지만, 그냥 바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일어날 일 같은 건 까맣게 모른 채 ‘지금 여기’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검은 시절은 검은 시절대로, 분홍빛의 시절은 분홍빛 시절대로. 빛과 어둠 모두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 미래의 어둠을 당겨와 뒤범벅으로 섞어 회색빛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주디 리브스 <365일 작가 연습> 8/27 과제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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