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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30. 2021

필요를 알 수 없는 여백이 우리에게 숨 쉴 틈을 준다

발코니, 여백의 공간

우리 집은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몇 계단을 올라가면 새로운 공간 구조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어, 실제로는 2층 정도의 높이인데 4층 집처럼 보인다. 1층에는 천장이 높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 방을 음악실로 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방이 2개 나오는데, 하나는 서재로 다른 하나는 큰 아이 방으로 쓰고 있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3층 안방이다. 안방 안에도 작은 계단이 있어 드레싱 룸으로 연결된다. 마지막 4층에 올라가면 다락방처럼 천장이 낮지만 아주 넓은 방이 나오고, 막내 아이 방으로 쓴다. 


무릎이 좋지 않은 내게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구조 덕분에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 실평수는 전에 살던 집보다 작아졌지만, 살면서 느끼는 공간은 오히려 넓어졌달까. 숨겨진 공간을 찾기 위해 펼치는 상상의 힘이 실제보다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게 해 준다. 


블록 놀이하듯 쌓아 올린 전체 구조도 특이하지만, 1,2,3층 방에 달린 발코니도 작지만 재미있다. 창문을 열면 한 사람이 다리를 뻗고 앉을 만한 넓이의 발코니가 나온다. 활용도가 높은 공간은 아니라, 처치 곤란한 물건을 쌓아 놓는 창고처럼 쓰일 수 있다. 실제로 1층 방 발코니는 거의 창고가 되었다. 하지만 발코니는 창고와 달리 햇빛이 들어오고, 창문을 열어 환기도 가능하다. 창고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공간이다. 


미련퉁이 여름이 물러가지 않고 끈적하게 달라붙던 어느 날, 시원하게 비가 내렸다. 하지만 실내는 눅눅했고 에어컨을 켜기에는 애매한 온도였다. 문득 노트북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 앉아 보았다. 후텁지근하던 방 안과 달리 발코니의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열기를 식혀주었고, 3면이 창으로 둘러싸인 발코니는 경쾌한 빗소리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몸이 실제 젖지 않으면서도 비를 맞는 듯 시원했다. 아, 이렇게 좋은 공간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때로는 발코니처럼 딱히 필요를 알 수 없는 여백의 공간이 우리에게 숨 쉴 틈을 준다.  


서재에 있는 발코니에서


그 후 나는 종종 발코니로 나간다. 너무 덥거나 답답하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세상으로부터 잠시 숨고 싶을 때도 좋다. 캄캄한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좋고…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며칠 전부터 새로 산 화분을 발코니에 놓아두고 있다. 햇빛과 바람을 듬뿍 받고 잘 자라라고… 발코니 하나쯤은 화분에게 내어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는 비밀의 공간이 아직도 많으니까. 


베란다, 발코니, 테라스 등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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