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어던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악기를 처음 잡아보는 ‘왕초보’ 밴드, 날벼樂이 세 곡을 완주하는데 두어 달이 걸렸다. 물론 여기서 ‘완주'는 곡을 완성했다는 뜻이 아니라, 악보대로 끝까지 연주를 해봤다는 뜻이다. 세 곡을 완주한 기념으로 조촐한 기념 파티를 했다. 첫 합주 때 겨우 전주 여덟 마디를 한 시간 반 동안 연습했으니,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연주했다는 것도 파티를 할 만큼 큰일이다. 무려 세 곡이나.
파티 도중 우리가 서로의 본명이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가 짚어주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30대에서 50대 직업군도 다양한 일곱 명이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 두 달 넘게 모여 합주를 했으면서, 서로의 본명을 모른다니. 그뿐 아니라 나이는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만났다면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파악될 '호구조사' 내용을 물어본 적이 없던 것이다.
세상에서 쓰는 이름 대신 각자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먼저 지어주었다. 그 이름에는 각자의 꿈이나 바람 등이 담겨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자, 우리는 그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비로소 벗어던질 수 있었다. 껍데기를 그렇게 벗어던지고 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보이지 않던 상처, 가슴속 공허,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정, 터져버릴까 조심조심 붙들고 있던 꿈. 우리는 서로에게 내밀한 부분을 조심스레 열어 보였고, 열린 틈으로 살며시 들여다본 것들을 가슴에 고이 새겼다.
하지만 이제 좀 알게 되었다고 함부로 서로를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사이’라는 걸 겸손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밀하고 은밀한 많은 것을 공유하고도 여전히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
세상 누구도 알아봐 주지 못하는 내 모습을 알아채고 발견해주는 벗들. 그들의 이름을 묻지 않아 다행이다. 여전히 모르기에, 조금씩 알아가는 모든 순간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