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앞서는 ‘몸’의 감각_<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 (…)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 어떤 호감도 혐오감도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근본적일 수는 없다.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이나 지성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살인자나 남색자에겐 호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입 냄새가 지독한 (상습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가 없다. (…) 이른 아침의 목욕이 출신이나 재산이나 교육보다 더 효과적으로 계급을 가르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10여 년 전, 무더운 여름날 중국 어느 도시. 누구에게도 몸을 대지 않고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하철 안은 만원이었다. 사람들이 뿜어대는 열기와 땀 냄새, 감은 지 오래된 머리 냄새, 발 냄새 등 온갖 종류의 고린내가 솔솔 올라와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손수건을 슬쩍 꺼내 코와 입을 덮어 가리던 ‘여자’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그 여행 중에 프러포즈를 계획했던 '남자'는 찡그린 채 코를 가린 ‘여자’의 얼굴을 본 후, 여행이 끝나도록 끝내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꿈을 펼치고 싶던 ‘남자’는 중국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와 평생을 함께 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가볍게 들리는 이 일화로 ‘남자’와 ‘여자’는 하마터면 결혼하지 못할 뻔했다. (*’ 여자’는 나이고, ‘그’는 내 남편이다.)
생각의 좌표는 ‘우’ 보다는 ‘좌’에, ‘보수’보다는 ‘진보’에 위치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몸’의 감각은, 그리고 내 몸과 영혼에 배어 있는 습관은 전혀 다른 곳에 좌표를 찍었다.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통해, 내가 아름답게 쓰고 있던 가면을 솜씨 좋게 벗겨 냈다.
갈수록 느끼는 거지만 내가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드러내는 작은 ‘몸짓’과 ‘행동’이 나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해주니까.
무더운 여름이 오면 만원 지하철 안에서 향수를 살짝 뿌린 얇은 손수건을 코에 대고 서 있는 젊은 ‘여자’와 그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를 출간했음에도 중국의 '3주+' 시설 격리 기준 때문에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베이징에서 귀한 지인들 모시고 간단한 출간 축하 모임을 가졌어요.
그 자리에서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에 실린 에세이 한 편을 낭독했는데요.
악취를 견디지 못해 하마터면 소중한 인연이 깨질 뻔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남편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