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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21. 2022

오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선물 같은 날

“선물 같은 날이에요. 오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나 역시 이 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함박눈이 선물처럼 펑펑 내리던 날. 

춥고 암울했던 유학시절 버려진 고아 같던 나에게 돌아가 손을 내밀어준 것 같던 날. 


유학생 발레 무료 강좌 4회 수업 후 찍은 사진


입국 시 시설 격리 3주가 의무화되어 있는 중국에서 유학생들은 방학이 되어도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때문에 더욱 쓸쓸할 수 있는 겨울 방학을 맞아 재능 기부를 해준 선생님과 함께 유학생들에게 무료로 나흘간 발레 수업을 했다. 레오타드와 발레 스커트, 타이즈와 슈즈를 선물하고, 발레의 기본 동작, 발레 스트레칭, 그리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는 법 등을 가르쳤다. 마지막 날에는 튀튀를 입고 우아한 동작을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학생들과 함께_ 김미옥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침 마지막 날에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다. 수업을 마친 후 점심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발레 수업 장소에서 바라 본 눈


“그런데 왜 유학생들에게 용돈도 나눠 주고, 발레 수업도 해 주신 거예요?” 


내게도 유학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가 내 삶에서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호기롭게 방송국을 그만뒀지만, 금세 빈털터리가 된 나는 옛 동료나 친구들 중 누구와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낯선 타국에 홀로 버려진 고아 같았다. 그때 정말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그때 했던 수많은 어리석은 결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저 그런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그때의 나처럼 어둡고 외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는 유학생, 특히 자매들에게 마음이 갔다. 


“연말에 보내주신 용돈 덕분에 작품을 만들어 발표할 수 있었어요. 재료비가 없어서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돈이 들어온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작년 연말 유학생에게 쓰이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여백을 채우는 사랑> 인세로 번 돈을 아이들에게 5백 위안 씩 나눠 주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눠 준 것이다. 사실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 돈을 어떻게 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쓸쓸하게 보낼지 모르는 연말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랐을 뿐이다. 인세로 번 돈은 보잘것없어서 겨우 50명을 채우지 못하고 동이 났다. 하지만, 그 적은 돈의 일부가 자칫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멋진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중국중앙미술대학(中央美术学院) 디자인 전공 김도윤 학생 작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눈물이 났다. 그리고 풋풋해야 할 청춘의 한 때를 이국땅에서 수면제와 술로 달래던 20대의 나를 만났다. 그때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가만히 어깨를 안아주었다. 아이들을 위로하겠다고 마련한 자리에서 내가 깊은 위로를 받은 것이다.


아름다운 그녀들과 함께한 근사한 시간


아름다운 그녀들이 다정하고 뭉클했던 이 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모든 게 끝난 것 같고 혼자 버려진 것 같을 때,  

오히려 어둠과 고통이 나만의 고유한 빛을 만드는 재료가 됨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절대 혼자가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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