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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12. 2022

'냉파' 대신 '책장 파먹기'를 6주 넘게 하고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지쳐간다

새로운 책을 공급받지 못한 지 6주가 넘었다. 중국 생활 16년 차, 이런 일은 처음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늘 애증의 감정이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긍정과 부정이 균형을 잘 잡아왔다. 부정적인 쪽으로 확 기울어진 건 최근에 와서다. 아무 논리도 없이 떼쓰고 고집부리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심지어 그 아이의 손에는 무서운 흉기가 들려 있다.


처음 DHL에서 알라딘에서 주문해 베이징에 들어온 책들을 배송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을 때는 이렇게 장기전이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 '반송' 또는 '보류' 중 선택하라고 물었을 때, '보류'라고 답했던 것도 아무리 오래 가도 2,3주면 풀릴 줄 알았던 것이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꽤 있었기에, 규제가 풀릴 때까지 충분히 버틸 자신도 있었다.


한국에서 들여오는 책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어 있다는, 소독을 하고 6주나 묵혀 두어도 그 바이러스가 살아서 사람에게 전염될 거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하필 이럴 때 신간을 출간한 바람에 베이징의 교민 서점으로 들여오던 수백 권의 책들도 발이 묶였다. 최악의 타이밍으로 출간한 건 내 부덕일까.


봉쇄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하이는 지하철을 아예 모두 정지시켜 버렸다. 내가 사는 베이징도 계속해서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 남편은 재택근무, 대중교통 이용은 금지되었고, 식당, 카페, 헬스장 등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매일 줄을 길게 서서 단체로 핵산 검사를 받으며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일종의 '수용소'로 끌려가고, 밀접접촉자만 있어도 그가 사는 건물은 봉쇄가 된다. 어제는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한 동이 봉쇄되었다. 밀접접촉자 한 명이 산다는 이유로.


갑자기 냉장고를 사들이는 집이 늘고 있다. 봉쇄를 대비해 먹을 걸 넣어두기 위함이다. 왜 준비를 안 하느냐고 걱정 어린 질문도 많이 받는다. 아무 준비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생수 두 박스, 쌀 5킬로, 라면 5팩, 스팸 3개, 참치 캔 5개, 김 2팩, 멸균 우유 2병, 콜라 5병을 사 두었다. 사람들이 몰려 아수라장이 된 슈퍼마켓에서 이것들을 사들고 나올 때, 분명 내 잘못이 아닌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확진자 1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 같은 층과 상하 라인 가정 모두 강제 격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급조된 열악한 시설로 끌려가는 걸 두려워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며 '조심하세요' 말하다 말고 '도대체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아직은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정녕 자유로운가. 아직 봉쇄되지 않았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긍정 에너지로 이겨내라고 하는데, 심장이 자꾸 벌렁벌렁 뛴다. 심호흡을 하려고 하지만 자꾸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이럴 때일수록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자꾸 실패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싫다.


'책장 파먹기'에 지치면 결국 '밀리의 서재'를 다시 결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책을 선호하는 내 취향 따위는 분명 사치니까. 새 책을 읽을 수 없는 건 고통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내가 겪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그저 '새 책을 읽지 못해서'라고 말하려는 건 어떻게든 그 크기를 축소시켜 보려는 발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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