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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0. 2022

평안히 깃들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만들기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힘든 마음이 쉴 수 있도록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임됨으로 기존의 저소득층 원무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원주민'이 억울하게 밀려나는 현상이 도심이 아닌 '집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집안 환경은 전혀 개발되거나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중국 정부가 시대를 역행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점점 방역 규제가 심해지더니 5월 들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직장인은 일터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침 8시부터 두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온라인 수업을 한다.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이 나와 같이 쓰는 서재를 독차지했다. 서재에는 책상이 두 개 있어 남편과 내가 같이 쓰는 공간이다. 공용공간이라고는 해도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내 차지가 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자 나는 내 공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남편이 나를 밀어낸 건 아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회의 때문에 시끄러워 내 발로 도망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공간을 억울하게 뺏긴 '원주민'은 당장 갈 곳이 없다. 침대에 엎드리거나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지만 자세가 불편해 집중할 수 없다. 하지만 불평하거나 하소연할 곳이 없다. 남편도 아이들도 집에서 업무를 하거나 수업을 하는 걸 원해서 하는 게 아니니. 


며칠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서성이다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한숨만 쉴 게 아니라 내가 머무는 공간을 내 몸이 긍정하는 공간으로, 내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깃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고. 감사하게도 잠자는 용도로 쓰는 안방이 남아 있고, 손님이 많을 때를 대비해 사둔 접이식 간이 책상이 있다. 접이식 책상은 몹시 흔들거렸지만, 균형을 맞춰 다리 밑에 종이를 접어 괴어 놓으니 흔들림이 많이 줄어 그런대로 쓸만해졌다. 작은 접이식 책상 두 개를 이어 놓은 후 화려한 테이블보로 덮으니 로맨틱한 책상이 만들어졌다. 침대 옆에 간신히 놓을 만한 공간이 있었고, 마침 창가라 빛도 충분히 들어온다. 



아이디어를 써서 낙후된 곳을 힙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으면 집세가 오르고, 그곳을 가치 있게 만든 이들은 결국 그곳에서 밀려난다. 더 낙후된 공간을 찾아내고, 또다시 그곳을 멋지게 꾸밀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새롭게 꾸민 공간에서 언젠가는 또 밀려나게 되겠지만 그 마저도 즐길 수 있다면... 어차피 익숙해지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니, 그때쯤 또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걸 오히려 즐길 수 있다면...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집안에서 식구들과 스물네 시간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숨 쉴 구멍을 찾고, 작아도 좋으니 나 자신이 온전히 깃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내가 만든 임시 책상에 깃들인 빛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내 몸은 여기 묶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상상력의 연 위에 올라타고 하늘을 맘껏 날 수 있다.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실만 단단히 붙들어 매 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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