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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20. 2022

사춘기 두 아들과 교감하는 방법

패밀리 밴드 합주로 주말 오후 보내기

한동안 한국에서 일하느라 떨어져 지내던 남편이 얼마 전 돌아왔다. 베이징에 도착해 3주간 시설 격리를 하는 중 남편이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우리 '사랑의 슬픔' 연주 하자!"였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식구들과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밴드 합주였던 것이다. 


유치환과 벗님들?
아니, 이치현과 벗님들!


너무 '올드'하다고 불평한 건 아이들뿐 아니었다. 분명 어디서 들어보긴 했을 텐데, 가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너무 올드하잖아.
아빠는 왜 매번 단조 노래만 골라?


우리 중 그 누구도 진짜 싫어서 투덜거리는 게 아니란 걸 안다. 아웅다웅하는 것도 밴드 합주의 재미 중 하나인 것이다. 두 아들 모두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고 함께 대화를 할 시간도 기회도 적어졌다. 하지만 밴드 합주를 하는 동안만큼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각자가 고른 음악을 보면서 서로의 관심사와 심경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함께 연주하며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가족 밴드에서 아무리 가장이라 해도 남편 마음대로만 선곡을 할 수는 없다. 식구들 모두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하나씩 고르는데, 매번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게 된다. 누군가가 골라온 음악을 합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로 배려한다. 평생을 '고음불가 음치'라고 여기며 노래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몇 달 전부터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 틀 하나를 깨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를 골라, 보컬을 하겠다고 할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듣기 괴로울 걸 알면서도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드러머인 내 자리를 큰 아이가 맡겠다고 흔쾌히 나서기도 했다. 아이는 드럼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패밀리 밴드에서 실력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몇 년째 밴드를 하면서 하나씩 모은 장비들이 꽤 늘어, 거실이 금세 합주실이 되었다. 스피커와 앰프를 연결하고, 엉켜있는 수많은 선을 풀어 악기에 연결한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않는 건 밴드의 목적이다.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고, 그야말로 함께 즐기자는 거니까. 매 순간 'Fun'만은 뺏기지 말아야지.


남편이 '사랑의 슬픔'을 틀어서 들려준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7080 음악을 귀담아듣는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저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 연주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패밀리 밴드 YESS 합주_'사랑의 슬픔'


아이들은 악기를 메고 소파에 드러누워 연주하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연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녹화한 영상을 보면 연주 도중 고개를 까딱까딱하거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는 걸 볼 수 있다. 각자 제 방에 틀어박혀 뭘 하는지 하루 종일 잘 나오지도 않는 사춘기 두 아들과 두 시간 뜨겁게 합주를 하다니. 패밀리 밴드 합주보다 사춘기 아이들과 더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패밀리 밴드 YESS 합주_'매직 카펫 라이드'


때로는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이 음악과 함께 가슴으로 흘러들어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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