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는 음악만이 아니라 삶을 함께 연주한다
20대 때 지나가다 실용음악 학원을 발견하고 갑자기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며칠 내 직장 동료 두 명을 설득해 3인조 밴드를 만들었다.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주제에 리더가 되었다. 나보다 오래 음악을 했던 멤버들이 알아챘던 모양이다. 열망과 열정이 실력보다 큰 동력이 되리란 걸. 큰소리친 대로 반년 만에 카페를 빌려 공연을 했다. 다양한 장르로 무려 스무 곡을 연주했고 티켓도 전부 팔았으니, 첫 공연으로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 밴드 만들어 공연도 해 봤다!’ 그때만 해도 밴드가 내게 예쁜 모양의 조가비나 조약돌처럼 수집 아이템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글쓰기 모임을 운영할 때, 누군가 밴드를 하고 싶다고 던진 말을 붙들고 무려 20년 만에 다시 밴드를 만들었다. ‘못한다, 안된다’를 달고 사는 이들을 독려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나보다 실력이 더 초보인 멤버들도 있어 쉽지 않았지만, 약속한 대로 그럴듯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마침 공연 직후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해지면서 맞춤하게 밴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하지 않는데도 그 누구도 나를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멤버 중 한 사람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잠깐 모여서 연주하다 공연하고 해체하는 밴드는 많아요. 하지만 계속 이어가는 밴드는 별로 없어요. 이 밴드는 어쩐지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요.
밴드란 도대체 내게 뭘까. 허영심을 채워주는 일회성 이벤트인가. 정말 그뿐일까.
새벽에 일어나 외롭게 글을 쓴 지 꼭 10년이 되는 날, 그날을 기억하고 축하해 준 건 밴드였다. 어차피 소설가로 등단도 못했으니 그저 실패의 10년일 뿐이기에 나 혼자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라 여겼는데, 밴드는 그날을 소중히 여겨준 것이다. 밴드는 음악만 함께 연주하는 게 아니라, 삶을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사실 밴드는 낯선 땅에서 내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 아니 모든 것이었다. 첫 직장에서 갑자기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발령받았을 때 처음 밴드를 만들었다. 밴드와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멋진 풍광을 찾아 여행을 다녔다. 6밀리 카메라로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도 멤버들에게 배웠다. 밴드는 그야말로 삶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지경을 넓혀 준 스승이었다. 외롭고 힘들었을 낯선 땅에서의 삶이 밴드로 인해 '찬란한 시절'이 되었다.
멤버 다수가 탈퇴하는 바람에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안 그래도 바쁜 스케줄에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밴드는 포기하라고 언질을 주는 이들도 있다. 멤버들의 살인적인 스케줄로 전원이 모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계획은 많지만 실력이나 상황으로 볼 때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밴드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다.
돌아보니 반짝이던 시절에는 곁에 밴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