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m부터 1,7미터까지 260여 개의 성기들을 보러

6년 전 기록해 둔 글이 눈앞에 현실이 되다

by 윤소희
아이슬란드 후바시크에 위치한 성기 박물관 - 성기 수집광 ‘시거더 자타슨’ 씨 건립.
바다코끼리, 고래 등 동물과 처음으로 인간 성기도 전시.
90여 종 261개 성기.
2mm 쥐~ 1.7m 향유고래
기증받은 10개 넘는 사람의 생식기"

2016년 8월 7일 에버노트 기록 중



6년 전에 기록한 노트에 있는 내용이다. 읽고 있던 책에서 뻗어 나온 호기심 때문이거나 구상하고 있던 글을 위해 검색하다 나온 결과일 것이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으니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노트에 기록된 그 박물관이 지금 머무는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트를 기록할 당시에만 해도 아이슬란드가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고, 살아 있는 동안 가볼 수 있는 나라라고 여기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기록을 하고 6년이 지난 지금, 2mm 밖에 안 되는 쥐의 성기도 1.7m나 되는 향유고래의 성기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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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있는 성기박물관


진짜 우리 들어가도 돼?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을 사춘기 두 아들은 키득거리며 박물관에 들어섰고, 나는 기록의 놀라운 힘에 감탄하며 박물관을 돌았다. (직접 찾은 덕분에 후바시크가 아니라 레이캬비크에 있다는 오류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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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서 정보를 찾고 기록할 당시만 해도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었지만, 이제 제주의 '성박물관' 등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박물관을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 자체는 새로울 것도 감탄할 것도 없다. 내가 감탄한 건 그저 기록의 놀라운 힘일 뿐이다.



"물론 이런 기록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사실 모든 기록이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이 메말라갈 때, 열어볼 기록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중



2012년 12월 29일부터 사용했으니, 연말이면 에버노트에 기록을 남긴 지 꼭 10년이 된다. 지금까지 2만 개가 넘는 노트를 기록했다. (22.7.2. 현재 20,257개) 이어령 교수도 에버노트를 사용했는데, 1만 4천 개가 넘는 메모를 저장했다고 한다.


물론 2만 개의 노트가 모두 주술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0년 전 기록한 짧은 메모 한 줄이 실현되어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라는 책이 되어 나왔듯이, 많은 기록들이 힘을 발휘해 현실이 되는 걸 자주 목격했다. 뭐라도 끼적이며 기록을 남기는 건 이미 습관이 되었으니, 이제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에 좀 더 신중해야겠지? 언제 이뤄져 눈앞의 현실이 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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