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단테의 <신곡>은 유명한 고전이지만, 너무 많은 곳에서 인용되니 안 읽고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신곡>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든 건, 이탈리아 어로 원서 낭독하는 걸 유튜브로 듣고 아름다운 소리에 완전 매료됐기 때문이다.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건 그런 의미에서 재미가 많이 떨어진다)
마침 <신곡>이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9박 10일의 일정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거라, 해외 입국자 10일 격리 기간 중 읽으면 딱 좋겠다고 여겼다. 격리 시설로 들어갈 때 '지옥' 편을 읽기 시작해, 마지막 10일 격리 해방될 때 천국의 가장 높은 곳 엠피레오(Empireo)에 도달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끔찍한 지옥에 들어갔던 단테는 열흘 만에 엠피레오에 도착해 모든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나는 <신곡>을 다 읽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도 모른다. 설명도 없다. 언제 나갈 수 있다는 약속도 없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 편 중
애초에 단테의 열흘 여행을 열흘 격리의 비유로 생각했던 것 자체가 틀렸다. 단테는 지옥에서 시작해 연옥, 천국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저 지옥에 머물러 있을 뿐인 것을. 아니, 이곳은 지옥이 아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후회하지만, 이곳의 있는 나는 왜 이런 형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신곡>은 여전히 훌륭한 책이지만, 중국 격리 중에 읽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지옥' 편의 고통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간직하는 한,
그런 저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연옥' 편 중
나는 행위가 아니라 행하지 않은 까닭에
그대가 열망하는 높은 태양을 잃었고,
내가 그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지.
'연옥' 편 중
형제여, 사랑의 힘은 우리의 의지를
평온하게 하니, 단지 우리가 가진 것만
원하고 다른 것에 목말라하지 않는다오.
'천국' 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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