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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는...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

by 윤소희

유희경 시인의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이라는 시를 필사하다 문득 느릅나무의 생김새가 궁금했다. 여기저기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무지만, 얼굴을 찾아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니. 무심했던 마음을 슬쩍 감추며 검색창에 느릅나무,라고 쳤다. 검색 결과로 관련 광고를 먼저 보는 건 익숙한 일임에도 조금 놀랐다. 나무에도 광고가 붙는구나. 스크롤을 좀 더 내리니 느릅나무와 관련된 인기 주제는 '부작용'과 '효능'이었다. 비염이나 코막힘에 좋은 느릅나무를 먹는 법과 효능에 관한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미지만 모아 놓은 탭을 클릭해 들어가자, 열매, 꽃, 효능, 잎, 껍질, 껍질 효능 등으로 세분화된 탭이 다시 떴다. 모두 느릅나무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시작했지만, 골목에 가만히 서 있는 느릅나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멋진 가로수길이라도 이뤄 포토존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골목에 쓸쓸히 서 있는 느릅나무는 쓸모없다.


시인의 시 속에서 느릅나무가 하는 일은 '아무도 깨우지 않게 생활이 돌아눕는' 일 뿐이었다. 아무도 깨우지 않고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것. 느릅나무의 일이다. 아니 내 일일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에서 '그 가만 새벽에 어린 부부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그렇게 잉태되었는지 모른다.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는,

생명이다.



tree-gf989cfaf8_1920.jpg 느릅나무 e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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