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기다리며'_정현종
시를 기다리며
-정현종
시가 안 써지면
그냥 논다
논다는 걱정도 없이
논다
놀이를 완성해야지
무엇보다도 하는 짓을
완성해야지 소나기가
자기를 완성하고
퇴비가 자기를 완성하고
虛飢가 자기를 완성하고
피가 자기를 완성하고
연애가 자기를 완성하고
잡지가 자기를 완성하고
밥이 자기를 완성하듯이
죽음의 胎속에
시작하는 번개처럼
글이 안 써지면
그냥 놀아야 하는데
나는 그냥 놀지 못한다.
놀 때도 ‘논다는 걱정도 없이'
놀지 못한다.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이 ‘바보’라는데,
나는 놀지도 못하는 '진짜 바보’다.
머릿속을 털털 털어내 비워 버리고
순전히 비어 있는 하얀 여백 상태로
하릴없이 놀아보고 싶다.
글이든,
다른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 들어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