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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12. 2023

돌아가신 어머니의 옷을 입고 어머니의 흔적을 더듬으며

엘리자베스 노블 -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가 입던 옷을 한 벌 가져와 입고 있다. 아주 잠시지만 어머니가 안아주시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이 든다.



오래전 읽었던 소설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바바라는 장례식을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멋진 파티'로 계획한다. 장례식에 멋진 음악을 틀고, 딸들에게 검은색 옷이 아닌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달라고 부탁하며 편지를 남긴다.


내 묘지 앞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그곳에 없고,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
나는 흩날리는 바람 속에 있고,
새하얀 눈 위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가을비 속에 있다.

너희들 아침의 침묵 속에서 깨어날 때,
나는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 속에 있고,
조용히 하늘을 맴돌며 나는 새 속에 있고,
밤하늘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빛 속에 있으니,
내 묘지 앞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그곳에 없고,
나는 죽지 않았다.


(야외 장례식을 위한 완벽한 시 아니니?)

6월 12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을 영원히 사랑하는 엄마가


엘리자베스 노블 -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작정하고 편지를 써 두시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봉투의 남은 귀퉁이나 뜯어낸 달력 뒷장, 오래된 다이어리 등 여백만 있으면 손글씨로 채우셨다. 오랜 시간 병환 중이라 요리를 할 수 없었음에도 가족들 건강하게 먹일 레시피를 수도 없이 기록해 놓으셨고, 중국어 공부를 위해 중국어 문장들을 적어 놓으셨다. 그 사이사이 어머니의 기도제목과 삶의 다짐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의 기도제목 / 내가 낸 책 제목들을 따로 적어두신 메모



예기치 못한 곳에서 어머니의 기록을 발견했듯, 어머니 역시 아침 햇살 속에, 하늘을 맴돌며 나는 새 속에, 부드러운 별빛 속에 살아 계시리라 믿는다. 내 가슴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_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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