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정은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어쩌면 가장 듣고 싶던 말인지 모르겠다.
주위에 감기, 코로나, 폐렴 환자들이 많아졌다.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했는데, 감기에 걸려버렸다. 그나마 가벼운 감기라 다행이다. 가벼운 감기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하루 종일 자고 또 잤다.
최진영의 소설 '썸머의 마술과학'에 물을 가득 담은 유리컵에 동전을 한 개씩 집어넣는 '마술'이 나온다. 분명히 물이 가득 찼는데, 어떻게 동전을 넣어도 넘치지 않을까. 표면장력 때문이다. 마술이자 과학이다. 끝없이 동전을 넣어도 넘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썸머는 세 번째 동전을 넣을 때 물이 넘치곤 했다.
과학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마술의 힘을 믿음으로 동전을 계속 집어넣어 본다. 나 역시 그랬다. 이 동전까지는 괜찮겠지. 세 개보다 훨씬 많은 동전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내게도 마지막 동전이 있었다.
배달된 삼계탕 국물은 미지근했다. 으슬으슬한 몸은 뜨거운 국물을 원하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작은 냄비에 배달된 삼계탕을 넣고 끓였다. 팔팔 끓던 삼계탕이 푸르르 소리를 내며 넘쳐흘렀다. 이번에도 적당한 때에 멈추지 못하고, 넘치고 나서야 알아챘다.
조금 넘쳐 줄어든 닭국물을 앞에 두고 5년 전에 읽었던 책을 펼쳤다. 새로운 걸 읽어낼 기운도 없었기에.
"시시한 것은 없었다. 다만 시시한 마음이 있었다.
매일매일이 조금씩 달랐으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정은우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중
가장 빠르게 달려야 할 순간에 멈춰버린 나를 자책하고 있었다. 건강관리도 온전한 내 책임이니까. 시시한 건 무리해서 고장 나 버린 내 몸이 아니라, 그런 몸을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탓하고 있던 내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픈 목을 스카프로 감싸고, 평소라면 잘 먹지 않을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 든다. 으슬으슬 떨리고 나른해서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온전히 느껴본다. 오늘 하기로 했던 일들은 내일로 미룬다.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미뤘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질 일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아주 조금씩 달랐고,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