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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Nov 01. 2023

새벽 3시에 글 쓴 지 12년, 이래도 계속 쓸래?

<연수> - 장류진

밑줄 한번 치지 않고 설렁설렁 읽고 있다가 마지막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박박 치고, 얼굴이 빨개지다 결국 울고 말았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_ <연수> - 장류진



국문과에 서른두 살 늦은 나이에 입학한 미라 언니가 주인공인 소설.

소설에 대한 열정으로 띠동갑 동기들과 소설을 공부하는 미라 언니는 결정적으로 소설쓰기에 소질이 없다. 쓰는 소설마다 구리다.





� 언니가 쓴 소설들은 정말이지 딱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 늘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 유치하고 뻔한 대사... 안타깝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설은 물론이거니와 글쓰기 자체에 재능이 아예 없었다.




� 개중에 빛나는 부분을 칭찬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가차 없는 직언을 해야 할지, 두가지 길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이제 언니의 소설이라면 아예 읽지도 않고 합평에 오는 사람도 몇 명 알고 있다.




�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나 봐. 노력해서 나아질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

은지는 미라 언니가 형편없는 소설을 들고 와서 봐달라고 할 때나 자기가 나중에 소설가가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할 때면, 본의 아니게 언니가 문학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 미라 언니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소설을 쓰려고 하는 걸까?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좀 이상하고, 안 어울리고, 엉뚱스럽고, 어쩐지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창작 여행은 무슨 창작 여행이야, 문장도 안 되면서, 나는 그렇게라도 냉소해야 우울한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속으로 언니를 마음껏 비웃었다.



� "소설 같은 거, 아무도 안 봐요."

...

"어차피 우리밖에 안 봐요. 여기서 한발짝만 나가면, 아무도 서설 따위 관심 없다고요."

...

"나도 알아."

조금 뜸을 들인 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이게 제일 귀하고 중요해. 너처럼."

언니는 그때 더 멋진 말을 하고 싶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미라 언니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마치 언니의 소설 속 대사처럼 인상 깊지 못했다.




� 그 소설들은 전부 실패했다.

어떻게 고쳐도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구제가 불가능한, 망작이었다.


12년 동안 한결 같이 새벽 3시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끼적였다


소설 속 화자가 내지르는 말들이 모두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소설 속 미라 언니보다 훠~얼씬 나이가 많다. 

그리고 여전히 실패 중이다. 

하필 오늘은 내가 새벽에 일어나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꼭 12년 되는 날이다. 이래도 계속 쓸래, 하고 삶이 내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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