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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Feb 18. 2024

상담은 어려워

나도 나를 모르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세요?"


"네?"


"엄청 자상하게 하나하나 물어보셔서 엄청 놀랐어요."



옆자리 선생님의 뜬금없는 칭찬에 삐약이 교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껏 버벅거리느라 생각도 못한 칭찬이었으니까.




새 학기가 시작되고 1,2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가오는 또 하나의 긴장감 넘치는 구간이 등장한다. 그 기간은 바로 학생 상담 구간이자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마주보는 시간이다.



학부모 상담주간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학부모 상담주간의 전후로 아이들의 상담을 진행한다. 그래야 학생과 학부모님의 얘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고, 그때 얻게 된 정보는 1년간 아이들을 보듬는 데에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학생시절 나도 선생님과 상담을 했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선생님 한정 무한 관종이었던 나는 선생님과의 단둘이 나누는 교무실 수다 타임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걸 이제는 내가 해야 한다니. 오 마이 갓.



"대체.. 뭘 물어봐야 할까요.."


"그냥 가족 관계, 교우 관계, 관심 영역, 관심 있는 과목 같은 거? 그런 거 물어보면 돼요."


"시간은요?"


"점심시간에 주로 하는데 쉬는 시간에도 한두 명 정도는 가능해요. 보통 길어야 십 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아이들이 학기 초라 낯을 가리거든요. 남학생들은 더 그렇고요."


"그렇군요.."



나는 옆자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도통 어디부터 시작해야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성적이나 공부에 대한 얘기보다는 아이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 듣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그런 것들을.




그런 내가 선택한 것은 첫날에 나누어주었던 자기소개서와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질문들을 정리해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 후 만든 상담 일정표에 아이들이 원하는 시간을 받아 적어 일정표를 만들어 공지했다.



아이들이 바라는 시간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첫 학생을 불렀다. 굉장히 귀여워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안녕? 어떻게 이렇게 가장 먼저 신청했어?"



내 질문에 학생은 눈치를 보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 대답은 그 후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설정하게 해 주었다.



"늘 교무실에 상담받는다 하면 혼나는 거던데, 그럴 거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요.."



어쩜 교무실이라는 곳이 늘 혼나는 곳으로 인식되다니. 그런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에 학생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꾸러기스러운 모습과는 다르게 독서를 좋아하고 넓은 관심분야를 가진 학생이었다.



"MBTI가 뭐니?"


"좋아하는 게임이 있어? 오,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음, 목표가 행복하고 싶어? 그럼 네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건 어떤 거니?"


"와, 그런 걸 다 안단 말이야? 너무 멋진데!"


"혹시 반에 불편한 친구가 있니?"


"눈이 안 좋구나. 그럼 자리 바꿀 때 선생님이 신경 쓸게."


"속 얘기해 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수다하자."



쉬지 않고 진행되는 상담. 그 상담이 끝날 때마다 재빠르게 상담 내용을 원노트에 정리했다. 학생을 연달아 3, 4명씩 상담하다가 수업을 다녀오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수줍어하다가 이내 자기 얘기들을 꺼냈는데, 의외로 말이 없고 낯을 가릴 것 같던 남학생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2, 3주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원노트 내의 아이들의 정보가 그득하게 쌓였고,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



기분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상담이 끝나고 나서 확연히 달라진 애정표현과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환한 미소로 복도를 걸어가는 내게 달려오거나 하트를 만들며 사랑표현을 했고, 그 덕에 나는 첫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줄 수 있었다.




"상담 끝..!"



찌뿌둥한 몸을 펴며 외치자 교무실에 계셨던 선생님들께서 한두 마디씩 말씀을 하셨다.



"상담 너무 잘하시는데요?"


"목소리랑 대화 스타일이 완전 상담 톤이셨어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던데."


"진짜 대단하시네요."


"으아..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베베 꼬았지만, 무척이나 뿌듯했다. 이 정보들을 토대로 1년 동안 아이들을 보듬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곳간에 음식이 가득 찬 것처럼 풍족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첫 상담을 했던 남학생은 그 상담 이후 제법 내게 와서 얘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조금은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나름대로 속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단어를 고르는 그 모습에 대견해서, 말없이 기다리고 또 들어주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주 하는 그런 아이를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이상 학생에게 교무실이 '혼나는 곳'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 지겹고 지루하고 형식적인 재미없는 시간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해 삐약이 교사는 오늘도 새로운 질문들을 준비한다. 성적과 숫자가 없는, 학생의 다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들을.



이 질문들도 쌓이다 보면 더 빠르고 섬세하게 아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구가 되겠지. 그렇게 손을 내밀다 보면 언젠가 모든 아이들이 내 손을 잡아주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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