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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Feb 11. 2024

선생님 너무 다정하세요

너희들만 안 다쳤으면 괜찮아


과학 선생님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꼽으라면 어떤 소리가 있을까? 나는 단연코 이 소리라고 생각한다.



쨍그랑-!!이라고.




과학 선생님은 과목의 특성상 실험을 많이 진행한다. 물론 학교의 규모, 아이들의 인원수, 진도 등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 많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많은 과학 선생님들은 오늘도 실험을 준비한다.



나 또한 수없이 많은 실험을 진행했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실험의 경험을 알려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교과서에만 있는 실험뿐 아니라 중학생들에게도 고등학교 실험을 안내해 주고 간단한 실험을 직접 해볼 수 있게 시간을 짜볼만큼, 나는 실험에 진심인 선생님이었다.



그런 과학 선생님들은 과학실로 아이들을 부르는 순간부터 극한의 예민함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전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커서 자기 조절이 잘 되는 고등학생들은 실험과정을 보여주면 스스로 읽고, 찾아보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자기 조절과 집중력이 아직 미숙한 중학생들은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실험실에 가기 전 수차례에 걸친 과정 및 유의사항을 숙지시키고, 실험을 진행할 때에도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집중도 높게 진행하고 빠르게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조용!!"



아마도 과학실에 입성한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닐까. 게다가 그런 과학 선생님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 또한 정해져 있다.



아이들과 유리로 만들어진 검전기를 살펴보고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시간. 자유학기제도 아닌 자유학년제를 거친 아이들의 첫 수행평가다 보니 긴장으로 인한 실수를 줄이고자 난이도를 대폭 낮추고, 시간을 무척이나 충분하게 주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수행평가라고 나름대로 긴장한 얼굴빛으로 검전기를 관찰하고 문제를 풀어가던 중, 갑작스러운 소리가 과학실에 울려 퍼졌다.



쨍그랑-!!!


"꺄악!!"



재빨리 돌아본 곳에는 남학생이 잔뜩 굳어버린 채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검전기를 가지고 놀다가 미끄러진 것인지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파편이 튀어있었다.



남학생을 포함한 반의 모두가 선생님께서 크게 혼내실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모두 일제히 긴장모드로 돌입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반은 그 학년에서도 특히나 사랑스러운 꾸러기반이었고, 내가 그 반에서 언성을 높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치울.."



다급하게 떨어진 검전기에 손을 뻗으려는 남학생을 향해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멈춰!!! 건드리지 마!!"



커진 내 목소리에 아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재빠르게 남학생에게 다가가 아이의 두 손을 살폈다.



"다친 데는 없니?"


"네.. 저는 안 다쳤는데.. 저 때문에 이게.."


"너 이제 선생님한테 혼난다."


"네가 그거 물어줘야 될걸? 엄청 비쌀 텐데."


"와 진짜 망했다, 너 벌점 받겠다."



아이들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수군거렸고, 그 수군거림에 더 다급해진 학생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릎을 굽혀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그거면 돼."




"자, 이쪽은 위험하니까 여기서 마저 시험 보렴."



몇 번이나 학생의 손과 옷을 살펴보아도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작은 파편이 튀었을지 모르기에 그 옆의 학생까지 두 명의 아이들을 뒤쪽 책상으로 옮겨가게 하고, 시간을 확인한 뒤 아이들에게는 크게 외쳤다.



"지금 시험 시간입니다. 조용히 하고 마저 자신의 문제를 푸세요."



나는 발 빠르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아이들의 시험에 방해되지 않게 몇 번이고 쓸어 담았고, 책상 위아래로 작은 파편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자, 이제 앞으로 시험지 내세요."



정해진 시간이 다 끝나고 시험지를 걷고 나서야 아이들은 편안한 얼굴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내 표정을 살피면서,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인 나를 대변하고 싶었는지 남학생을 타박했고, 또 다른 아이들은 내게 앞으로의 일을 물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기물을 파손한 굉장히 큰 일이었으니까. 확실히 아이들은 이 사태에 대한 결과를 듣길 원하고 있었다.



"선생님 화나셨죠?"


"그럼 화 안 나셨겠냐?!"


"쟤 벌점 주세요!"



그런 조잘대는 소리가 멈출 때쯤 남학생의 얼굴빛은 또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그런 남학생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가, 안 다쳤죠?"


"네? 네.."


"그럼 됐어요. 너희들만 안 다쳤으면 선생님은 괜찮아."


"진짜요..?"


"너희들이 안 다치는 게 가장 중요해. 그거면 됐어."


"쟤 혼 안 내세요?"


"혼을 왜 내니.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실험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작은 실수를 했다고 혼나서 너희들에게 실험실이 '오기 싫은 곳'이 되면 안 돼."


"......"


"대신 너희도 봐서 알겠지만, 실험실이란 곳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할 수 있고, 그 흥분이 이렇게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 해. 알겠니?"



톨의 거짓도 없는 내 말에 순식간에 과학실이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작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너무 감동이에요."


"선생님, 정말 다정하세요."



너는 선생님이셔서 살았다, 진짜. 선생님 정말 저 지금 감동받았어요. 너무 따뜻하신 거 아니에요? 아이들은 저마다 내 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조잘거렸다.



다정이라니. 감동이라니. 그렇게 받아들여주고, 아무런 탈 없이 잘 실험을 마무리해 준 너희들이 더 감동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그 후 남학생이 실험실에서 검전기를 깨트려먹었다는 소문과 함께 내가 한 말들이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들이 퍼져나갔다. 그 덕에 나는 미처 외우지 못했던 그 남학생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고, 그 학생은 1년 내내 나에게 무한 애교를 발사하는 학생이 되었다.




실험실이라는 곳의 특성상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나 또한 이전 중학교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대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험 과정부터 실험 도구 사용, 각종 안전사고까지. 이렇게나 신경 쓸게 많은 실험 수업은 어찌 보면 '잘해야 본전'인 수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꾸준히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것은 항상 같은 이유이다.



과학실이라는 곳이 즐거운 곳으로 남기를 바라니까. 좋았던 장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늘 색다르고 즐거운 것을 했었고, 그랬기에 학교는 제법 괜찮은 곳이었고, 그렇기에 각자의 학창 시절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 기억 한 겹을 또 쌓기 위해 오늘도 삐약이 교사는 또다시 교과서를 펼치고 교재연구를 한다. 내가 만날 수많은 아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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