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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Feb 08. 2024

에버랜드 선생님!!

이렇게 많은 박수받아본 선생님 계십니까?


"와아!!!"


"안녕하세요!"


"얘들아 쉬잇..!"



수업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는 순간, 복도에 한가득 퍼지는 커다란 박수소리와 환영.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년의 시작 중 가장 중요한 첫 시간. 선생님들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첫 시간에는 대체로 자기소개와 위치를 알려주고, 교과의 평가 계획을 설명하거나, 수업을 나간다. 특히 첫 시간이라고 워밍업이나 아이스 브레이킹처럼 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분위기를 탄탄히 잡기 위해서라도 보여주기식으로나마 수업을 나가시는 경우가 많았다.



첫해를 무사히 넘긴 첫 담임인 삐약이에게는 첫 시간에 항상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수업에 대한 규칙과 과목에 대한 소개였다.



학생의 집중력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첫 시간부터 수업을 나가는 빡빡한 수업을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의 기선제압 및 규칙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소개해야 했다. 첫 시간 인사와 호명 후, 바로 나와의 수업 때 지켜야 하는 행동들을 읊어주자 아이들은 조금은 낯선 표정으로 갸우뚱거렸다.



"수업시간에는 소리 지르거나 뛰지 않아요."


"수업 막바지에 조금 이르게 끝날 땐 자리에 앉아서 정리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리가 있듯이, 이 앞은 선생님 자리입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계신 이 앞을 부득이하게 지나가야 한다면, 그때는 정중하게 '선생님, 잠시 지나가도 될까요?'하고 여쭤보는 거예요. 모두가 그러지 않을 때 여러분이 그렇게 물어보면 선생님들께서도 감동을 받으실 겁니다."


"질문 있나요?"



술술 읊어지는 규칙들에 아이들의 눈이 서서히 동글동글 빛나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이어서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해 보아야겠다.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사이언스요."


"하하, 또 다른 생각은?"


"과학은 일상의 경험이나 관련한 상황을 통해 과학 개념을 이해하고, 다양한 탐구 활동을 통해 과학적 탐구 능력과 태도를 함양하여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교과입니다!!!"


"와아!!!!"



랩처럼 쏟아져 나오는 긴 대답에 깜짝 놀라서 보니 센스 있게 교과서 맨 앞에 쓰인 머리말을 읽은 아이가 있었다.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주고 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과학이라는 과목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과학이란 간단해요. 자연을, 현상을, 그 밖의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진리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한 것들을 규칙으로써 정리해 놓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과학 나라의 언어들을 배워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계속 발음하면서 입에 붙여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말처럼 쓸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동안 공부하면서 정리해 두고 내면화했던 과학의 특징들을 읊어주자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확실히 이런 얘기를 첫 시간에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보였다. 설명 중간중간마다 특이한 예시들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낮췄다가를 반복하면서 45분간 원맨쇼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그 원맨쇼가 마음에 들었는지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고 나와의 첫 만남을 예쁘게 마무리 지어주었다.




"와!! 선생님 오셨다!"


"에버랜드 선생님!"


"얘들아 쉬잇!!"



다음 시간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너무나도 환한 미소로 온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갑작스러운 환호에 어색해진 내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환영과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그 격한 한영은 내가 교탁에 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얘들아 고마운데.. 에버랜드 선생님은 뭐니?"



간신히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부끄러움을 잠재우고 나서야 묻자 학생들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생님의 텐션이 에버랜드 아르바이트생 같으시거든요!"


"혹시 영상 못 보셨어요? 꼭 인터넷에 에버랜드 아르바이트생 검색해 보세요!"


"진짜 선생님하고 똑같아요!"



아이들의 얘기에 뒤늦게 영상을 찾아본 나는 교무실에서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봐도 나와 비슷한 텐션으로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아르바이트생 분의 영상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내가 원맨쇼를 한 것이 잘 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는 나의 원맨쇼에 대한 아이들의 진심 어린 평가와 값이었던 것이었다.




첫 만남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첫 학교에서 첫 근무를 즐겁게 했기에 이번 한 해도 열심히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아이들에게 과목에 대한 관심과 학업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많은 예비 선생님들은 고민하고 고민한다.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수업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 또한 많은 고민을 했고, 실제로 뚝딱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준비한 만큼 쏟아내고 난 뒤, 아이들은 솔직하게 첫 시간에 대한 평가로 한 학기가 넘도록 매시간마다 지치지도 않고 박수갈채로 나를 환영해 주었다.



아마도 그 박수에는 많은 얘기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평가는 이것 아니었을까?



정말 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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