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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Dec 25. 2022

산타의 마지막 선물

세상 치밀한 산타가 여기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니 문득 생각난 기억이 있어서 서둘러 옛날 파일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넘겨지던 클리어 파일의 한쪽에 도달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렸을 적 나는 산타가 진짜로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산타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믿지 않았다. 열두 시까지 자지 않고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산타가 알게 되면 선물을 받지 못할까 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 그런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주변의 친구들은 산타는 없다며 부모님이 산타라고 이야기했고, 심지어는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라며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나서는 반에서 산타를 믿는 학생은 나뿐이었다.



"아니라니까? 산타는 없어."


"부모님이 산타야. 너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못 받을 거야."


"맞아. 이제 우리는 어린이가 아니라서 못 받아."


"소흔이는 너무 순진하네."



나를 둘러싼 친구들의 단호한 말들이 오갔다. 나는 듣기 싫어서 귀를 꾹 막고 대답했다.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엄마 아빠도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어린이라고 했단 말이야. 나는 올 한 해도 정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씩씩하게 지냈다고. 그러니까 산타가 이번까지는 꼭 올 거야.



친구들은 나를 설득하길 포기하고 내기를 걸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올지, 안 올지에 대해서. 나는 반드시 올 거라고 외치며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양말을 문에 걸어두고,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나는 크게 실망했다.



"없어.."



문고리에 걸린 양말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고 방문 안쪽이나 바깥쪽에도 그 어떤 선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산타는 오지 않은 거야?"



비쭉 튀어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양말을 접으려 손을 갖다 대었을 때,



"어..?"



느낄 수 있었다. 양말 안에 무엇인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거봐. 산타는 있었어. 산타는 올해까지 오는 게 맞았어. 나는 어린이가 맞았어. 부푼 마음을 가지고 양말 속에 담긴 선물을 꺼냈다. 선물은 종이봉투에 담긴 편지와 깨끗한 만원이었다.




이렇게 나는 산타에게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그렇게 나의 동심은 끝까지 지켜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나? 가 돼서 다시 한번 산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동안 간직했던 동심을 꺼내어 부모님께 편지를 보여드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 커다랗게 웃으셨다.



왜 하필 만원이었어?라는 질문에 부모님은 답하셨다. 사실 내가 그때 원하는 게 딱히 없었다며, 초등학생에게는 무척 큰돈인 만원을 넣기로 하셨다고. 이렇게 나의 동심 속 산타가 눈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치밀한 산타 아니었나? 글씨 대조도 하지 못하게 컴퓨터 타자로 쳐서 인쇄한 편지를 쓴 산타라니.




산타의 마지막 편지는 앞으로도 간직하려 한다. 미래의 나의 아이가 동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면, 나도 나의 산타처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도록. 그때의 나의 행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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