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술을 잘 마신다.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하지만 유일하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에 취한 분위기도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매번 오빠는 술을 마실 때마다 말했다.
"이 오빠는 언제쯤 동생이랑 술 한잔 같이 마셔보냐."
아빠와 엄마를 보면 나도 분명히 술을 잘 마실 거라며, 봉인 해제만을 기다린다는 오빠의 한탄에도 한결같이 나는 술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설연휴를 기점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게 되었으니까.
너무도 힘든 일들만이 쏟아지던 1월. 스트레스로 가만히만 있어도 살이 쑥쑥 빠지고 입맛이 없다 못해 구역질이 나고 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런 컨디션으로 오랜만에 집에 온 오빠까지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저녁을 적게 먹고 집에 일찍 들어왔다.
"오늘은 드디어 먹어야지!"
나를 뺀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약 5년 전쯤 부모님께서 여행을 다녀오시며 사 오신 양주를 따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술에 관심이 없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술의 절반을 내가 마시게 될 것이라고는.
위스키와 코냑. 로열 살루트 38년 산과 헤네시 XXO. 설 연휴 동안 나는 이 두 가지 양주를 마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첫 번째로 마신 것은 로열 살루트 38년 산이었다. 엄청나게 비싸서 인생에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오빠의 말에 스트레이트잔으로 2잔만 마시기로 했다. 어울리는 안주가 뭔지도 모르고 조금씩 삼켜본 로열 살루트는 목구멍부터 식도가 쫘악 뜨거워지는 맛이었다. 향이 좋고 뒷맛이 깔끔한, 군더더기 없이 부드러운 맛이었다.
2잔을 마시고 나서 생각나는 것은 적절한 수분이 담긴 과일이었다. 그렇게 꺼낸 envy 사과는 아주 적절한 안주가 되었다.
2잔이 3잔이 되고, 4잔이 되고.. 결국 10잔이 되어 딱 떨어지게 되자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땅이 조금 흔들리고, 원근감이 조금 떨어지고,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상태. 그리고 그냥 웃음이 나는 상태.
"오!! 이게 취한 거구나!"
까르륵 웃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며 부모님도, 오빠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생애 처음 취할 때까지 자발적으로 편히 마시는 딸(동생)의 모습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아빠.. 나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왜 다리가 저리지?"
주절주절 떠들어대다가 잠들고 깬 다음날, 나는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엄마가 끓여주신 북엇국을 마셨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넌 나보다 술이 세구나. 네 아빠 딸 맞네."라고 하시면서.
그날로부터 하루가 지난 후, 이틀 연속으로 헤네시 XXO를 마셨다. 첫날은 3잔 반을, 두 번째 날은 7잔을. 당연히 스트레이트잔이었다.
헤네시 XXO는 로열 살루트랑은 반대로 입안에서부터 목구멍까지가 뜨거웠다. 향도 입 안에 맴돌고 지나갈 때 조금 더 강해서, 목감기가 걸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기하게도 목을 넘어서부터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완전한 반대의 술이었다.
안주도 이번에는 치즈와 초콜릿을 도전했다. 사과와는 또 다르게 술술 들어가는, 아주 멋진 안주였다.
3잔 반은 다음날 멀쩡히 걸어 다니고 숙취도 없었다. 7잔은 조금 취했지만 괜찮았다.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비싼 술이 역시 좋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오빠의 말이 맞았다. 나도 부모님의 딸이었다. 술이 센 아빠와 양주를 좋아하는 엄마를 골고루 닮았던 거였다. 단지 스스로 봉인했을 뿐.
웃기게도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나니 몸이 풀렸다. 소화가 안되고 입맛이 없던 것이 술을 마시고 나서 멀쩡하다 못해 식욕이 돌고 활기가 생겼다.
그런 차이를 느끼고 나니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주워온 자식이 아니라 아빠엄마의 딸이었다는 것을!
다만 스스로 묶은 봉인은 당분간 풀릴 수 없을 것 같다. 맥주로는 배부를 때까지 마셔도 취하지를 않고 양주가 더 맛있고 좋은데, 양주는.. 너무 비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