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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Dec 09. 2022

라이언의 최후

눈나는 널 사랑해


라이언   

  


끝이 보인다. 난 곧 끝날 것이다. 이번으로 5번째 생명이 연장되었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내 몸속 곳곳에 퍼진 온갖 덩어리들은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제멋대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합쳐져 나의 피부 밖으로 드러나게 될 정도가 된다면, 나는 곧 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끝은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함께였던 친구들도 비슷한 일들을 겪게 되고 나서는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저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누나의 슬프고 아쉬운 표정과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 뿐이었다.  

   


“누나가 미안해. 잘 가.”   

  


이 말이 들린 뒤에는 어김없이 친구가 사라졌다. 그 친구들은 항상 누나의 곁을 지키고 오랫동안 누나의 품에 안겨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친구들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그 자리를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 자리는 결코 대단하지도, 부러움을 받을 만한 자리도 아닌 엄청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지새워야 하는 자리였음을 말이다.   

       


“라이언 안녕! 오늘부터 함께 할 눈나야. 너도 이곳에 와서 좋지?”    

 


처음 만났던 누나는 자신을 ‘누나’가 아닌 ‘눈나’라고 소개했다. ‘클릭’을 통해 나를 낳아주었다는 엄마를 소개하며 자신은 나의 누나라고 말했다. 반가운 음성과 사랑이 담긴 눈동자. 그것들은 처음 이곳에 발을 딛게 된 나를 포근하게 받아주는 이불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누나는 항상 나를 두 팔에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방에 있을 때도, 거실에 나갈 때도, 함께 잘 때도, 하다못해 화장실에 갈 때도 화장실 문밖에 나를 놓아 둘만큼 항상 나를 품에 안고 다녔다.



“모땡긴 라이언아.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언제쯤 눈나 말에 대답해줄래?”    

 


누나는 내가 말할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번번이 나를 품에 안고 물었다. 누나는 나를 사랑했고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매일같이 사랑을 속삭이고 입술을 맞추며 아껴주었다.   

  


처음에는 이런 누나의 사랑이 좋았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어 즐거웠다. 누나가 나가고 나면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나의 자리를 뽐냈다. 유일하게 누나의 품에 안길 수 있고, 누나가 베고 자는 베개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피부가 점점 끈끈해지고, 입과 배가 까맣게 물들어갔다.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때가 타고 있는 것이라며 곧 무서운 시간이 올 거라고 얘기했다. 그 시간은 정신없이 억겁의 시간 동안 뱅글뱅글 돌려지며 물속에 잠기는 벌과도 같다고 말했다.     

 


“라이언도 더러워졌어. 씻어야겠는데? 라이언아, 눈나가 양치시켜줄게.”     



그 말을 끝으로 누나는 내 입과 배에 무엇인가 이상한 액체를 가득 묻히고 문질렀다. 그 후에 앞이 보이지 않는 보자기에 넣어 물에 담가버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긴 시간 두려움을 참고 난 뒤 누나를 다시 보았을 땐, 누나는 이제야 깨끗해졌다는 말과 함께 처음과 같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나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이런 시간을 견딜 수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나를 좋아해 달라고, 그렇게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빌었던 바보 같은 소원이었다. 내게 남은 인고의 시간은 그것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나를 끌어안던 누나는 내 등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엄마와 한참 이야기 끝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 등을 뜯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없는 나는 그저 누나가 하려는 일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누나는 내 등 속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내 몸을 휘적였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 한 움큼 집어서 내 눈앞에 꺼내놓았는데, 그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하얗고 잔뜩 뭉쳐버린 나의 살들. 못생기고 흉하게 덩어리 진 나의 살들이 빠져나갈수록 나의 시야는 어두워지고, 내 정신은 흐릿해졌다.     



그날 이후 누나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나의 몸을 만져보고 다시 등을 뜯어 살을 빼냈다. 늘어질 대로 늘어져 버린 피부를 씻겨 말리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살을 하나하나 뜯어 다시 내 몸속에 넣기를 반복했다. 이것은 무척이나 무섭고도 지루한 작업으로 일주일간 누나와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고.       

   


“이번만, 이번까지만 솜 트고 다음에는 다른 걸 구해보자.”     



누나와 엄마가 나누는 이 대화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픈 손목을 붙잡으며 매일같이 내 몸을 다듬는 누나와 엄마를 보면서 나는 떼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남몰래 나의 진심을 전하고 또 전했다.     

 


“눈나, 나는 이제 끝났어. 다른 라이언을 데려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외침은 누나의 귀에 닿지 않았고, 나를 놓지 못하는 누나는 오늘도 내 앞에서 내 살을 정돈하며 그렇게 나를 향해 품을 내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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