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교육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단어이자 인생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생각해 볼 수밖에없는 개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들이, 교사들이 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 교육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정자와 난자가 많나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착상이 되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순간, 그 순간부터 그 태아의 부모는 태아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러고 나면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마치 본능처럼 태아에게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는 행위 또한 자신의 분신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자 첫 교육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교육의 첫 주체는 교사가 아닌 부모이다. 매체에서도 많이들 이야기하듯이 부모는 세상에 태어난 아기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온 우주고 세상 그 자체이다. 부모는 반드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되고 안경이 되어 아기가 두 발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고리타분하게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 존재인지를 인식했다면, 그 큰 가치가 전해준 교육과 사랑이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되어 자라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1994년 10월 어느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작고 순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울거나 칭얼거리며 보채는 일 하나 없이 젖만 먹이면 하루 내내 잠들었고, 기저귀가 젖어도 보채는 것 없이 얌전히 기다렸다. 온 세상 아기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극찬이 쏟아졌던 아기. 그렇게 키우는 데에 하나도 어려움이 없었던 아기. 그 아기가 바로 나였다.
아기는 오빠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다. 다소 내성적인 듯 보였지만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대한 대화를 좋아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예의 바른 아이로 그렇게 자라났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짧고 순간적인 일들이 시간의 흐름만큼 스쳐 지나갔다. 손에 잡을 새도 없이 그렇게 빠져나간 순간들을, 아이는 커서 빠르게 다시 더듬어 정리하게 되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아니. 교사라면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아니. 오로지 자신이 받은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의 부모님이 얼마나 자신을 향한 애정을 쏟으셨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것을 오래 기억하고 남겨서, 자신도 자신의 아이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거창한 교육이 아닌 일상 속의 찰나의 교육들. 이제 그것들을 이곳에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