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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기저귀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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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90이 넘으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할아버지와 급하게 결혼했고 6·25전쟁이 터졌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 전쟁에 징집되어 갔고 할머니는 남편이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르는 세월을 보냈다.

얼마 전에 전화했을 때 할머니가 이제는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는 말을 슬프게 하셨다.

내가 만약 나이가 들어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아이처럼 기저귀를 차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한 인간으로서 자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 난 너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외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는데 같이 방을 쓰는 분과 싸워서

엄마가 맨날 사람하고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시곤 한다.

치매로 들어오신 분들은 보통 침대 묶어둔다.

나는 그것이 너무 놀라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 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계셔서

친구는 원래 그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빠한테 내가 내 차 운전을 부탁하자 엄마는 ‘이제 아빠 믿지 말라’면서

이제는 아빠 감각이 다른 차 몰 정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보통이면 아빠는 화를 내면서 뭐라고 하실 텐데 조용히 계셨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 슬픈 것 같다.

감각도 떨어지고 잘 볼 수도 잘 들을 수도 잘 움직일 수도 없다.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전에 공익근무로 고독사 후에 집안 소독 업무를 했던 사람이 시체 보는 것은 괜찮지만

시체 부패 냄새는 오래간다면서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 가면 찾아오지 않는 자식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현생도 힘들지만, 나의 노후와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할머니#기저귀#노후#나이듬#요양원#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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