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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07. 2019

나는 어떠한 가정에서 자라났는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내가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행복과 불행은 나에게 있어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또래집단에 내가 소속되자 친구네 집과 나의 집은 자연스럽게 비교대상이 되어왔고 그 속에서 우리 집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값비싼 옷을 입거나 학용품을 가지고 오는 아이를 보고 부러움과 시샘을 하기도 했다. 나는 1남 4녀 중에 셋째여서 옷이나 학용품은 모두 언니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았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싫어서 나는 친부모님이 따로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부자인 부모님에게 되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 때 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머리는 만화 캔디캔디에 나오는 이라이저 머리를 하고 레이스가 잔뜩 있는 예쁜 원피스에 양말도 레이스가 달려있었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다녔다. 그 아이를 보고 나도 저렇게 입고 다니고 싶었다. 나의 초등학교 때 스타일은 짧은 커트머리에 거의 바지만 입고 다녀 거의 선머슴 아이 같았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 덕선이가 ‘왜 나만 덕선이냐 “면서 형제 중에 중간으로 느낀 서러움을 말할 때 나도 울었다. 중간은 참 힘들다. 어디서든 양보를 해야 되는 상황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내 꿈은 외동딸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배려받고 존중받고 싶었다. 내가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대식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욕망을 억제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항상 내 마음속에 이렇게 되뇌었는데 ’ 내가 만약 커서 독립한다면....‘ 이러면서 나의 현재의 욕망을 뒤로 미뤄두곤 했다.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이러면서 현재의 고단함을 달랬다. 가장 좌절했을 때는 내가 대학을 서울로 가지 못했을 때었다. 형제도 많고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던 부모님은 그냥 부산에 있는 대학을 가기를 원하셨다. 난 서울에 원하는 대학이 있었고 합격권에도 있었기에 많이 낙담했다. 결국 부산에 있는 대학을 지원해서 입학을 했지만 내 꿈이 좌절되는 경험은 참 쓰디쓴 경험이었다. 대학 때도 나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차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은 보면서 꿈을 취업 뒤로 미뤘다. 밑받침이 잘 되어주는 집안을 만난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러한 비교는 사회 나와서 집 장만을 해 준다던가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부모를 만난 사람들을 볼 때면 많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남과 끊임없는 비교를 하면서 우리 집은 어떠한가? 생각을 했다. 행복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불행을 느낄 때도 많았다. 내가 행복한 집에서 자라났는가? 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난 우리 집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나보다 달라졌을까?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갔다면... 내가 어학연수를 갔다면...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나름 부단히도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자식에서 뒷받침을 확실하게 하는 부모들을 보자 대단하다는 생각과 내가 저런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행복한 가정은 무엇이고 불행한 가정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가정에서 자라났을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반영한다. 어떤 가정에서 자라났던지 현재의 나는 이렇게 존재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나를 있은 그래도 받아들이자. 완벽하지도 않고 아직 미성숙한 나이지만 만약에라는 이런 어설픈 변명으로 나를 거부하지 말자.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던 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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