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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3. 2019

내안의 나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관계는 형제나 자매 같다.
하나는 대중 앞에 나서며, 다른 하나는 멀리 숨어 있고 은둔적이다.
그들은 서로 완벽히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머리 스타인 『융의 영혼의 지도』


나는 여자이고 다분히 여성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외면상 나의 페르소나는 그러하다. 여성스러운 옷을 즐겨 입고 말투나 외향적인 면에서는 흔히 말하는 천상 여자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애교 많은 스타일은 아니다. 작고 여리여리한 외모도 한몫했고 이런 나에게 이성적으로 끌려 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은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러나 난 내 안에 남자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나의 그림자말이다. 내 안의 그는 마초적이고 카리스마 넘치고 야생마와 같다. 그 예로 굉장히 남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차는 SUV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차가 JEEP다. 영화 300을 보고 내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거기에 나오는 남성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을 이해했다. 그들의 폭력성을 말이다. 무자비한 살육과 폭력을 보고 통쾌했고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들을 보고 이성적으로 끌리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저들이 되어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고 싶었다.


나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이렇게 상반된다. 한 번은 옷을 사려는데 옷을 고르고 선배에게 옷을 보여주자 ‘남자들이 이런 옷을 입은 여자를 참 좋아하겠네!’라고 평을 했다.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고른 옷이 진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나는 왜 이런 옷을 사려고 할까? 별거 아니라면 아닐 수 있지만 고민에 빠졌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 안의 남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외면상 발현된 것이 내가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 봤다. 나의 페르소나는 나의 그림자가 원하는 여자인 것이다. 나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서로를 동경하고 사랑(?) 하고 있는 것일까? 아는 남자분은 핑크색을 좋아했다. 집도 온통 핑크로 꾸며져 있다. 자기 안에 여자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학교 다닐 때 여장남자대회를 나갔는데 그렇게 꾸미고 하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그분의 외면상의 페르소나는 그냥 평범한 남자였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지극히 여성스러운 나와 남성적인 나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고 내가 사귄 남자는 섬세하고 다정다감의 스타일이었는데 내 안의 남자와는 또 다른 스타일이었다. 내가 이성적으로 끌리는 남자와 그림자와는 거리가 있다. 내가 사귄 남자들과 나의 그림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사귀는 남자를 선택할 때는 나의 무엇이 발현될까? 내 휴대폰에 예쁜 여자 사진이 제일 많을 정도로 미인에게도 관심이 많다. 어떤 여자를 보면 내가 남자라면 사귈 텐데...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미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나의 페르소나가 좋아하는 것일까? 내 안의 그림자가 좋아하는 것일까?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상반된 두 개의 자아가 있고 동시에 혹은 선별적으로 발현된다. 성 정체성이 가끔 오락가락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안에 남자가 있고 그것을 느끼고 발현도 된다. 완전히 여성일 수도 남성일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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