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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3. 2018

빨강머리 앤에게

안녕 앤! 오랜만에 너의 이름을 불러보는구나. 어릴 적 넌 나의 일부분이었는데... 요즘 사는 것이 바빠 너를 거의 찾지 않았어.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어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 앤 너를 볼 때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거든.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엉뚱한 일을 잘 저지르는 너를 보면서 킥킥거리며 웃기도 하고 공감이 많이 되었어. 난 말이야 너처럼 나도 주워온 아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많이 했었어. 우리 엄마가 항상 나보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했거든. 나의 반응은 어땠는지 알아? 내 짐을 싸서는 엄마한테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엄마 찾는다고 나갔어. 나 정말 웃기지 않아?     


그래서 나는 고아인 너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었나 봐. 난 네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그때의 기분 알아. 나도 그랬거든. 나도 먼 산을 보고 이런 상상 저런 상상 하곤 했어. 고집 있게 할 말은 다하는 너를 보고 속이 다 시원하고 멋지다는 생각 많이 했어. 나는 소심해서 그러질 못했거든. 그리고 너랑 같은 점이 또 있어. 너에게는 다이애나라는 친구가 있지?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 너처럼 맹세까지 했었어. 꼭 편지 말미에 ‘너의 영원한 친구 00’ 이렇게 마무리하곤 했지. 앤을 보면서 따라 했어. 맞아. 난 너의 따라쟁이야. 그 친구랑은 아직도 우정을 유지하고 있어.      


앤 너를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어. 열심히 공부하는 너를 보면서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 글을 쓰는 너를 보면서 막연히 언젠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지. 늦었지만 이제야 글을 쓰고 있어. 앤 네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자라야지 하고 본받기 위해 노력했어. 고아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한 너를 보면서 나도 그런 자존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네가 거울 속의 너와 이야기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따라 해 봤어. 내가 있고 또 다른 내가 있다고 가정하고 대화를 해 봤지. 슬플 때나 화가 났을 때 하면 너무 좋았어. 사실을 객관화할 수 있고 쉽게 진정이 되더라고. 참 좋은 방법 같아.     


앤 네가 그런 환경에서 밝고 긍정적으로 자라났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초록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 환경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잖아? 그러한 환경 속에도 꿋꿋이 자라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야. 내가 만약 그러한 환경이라면 난 어떠하였을까? 너 같지는 못 했을 거야. 타고난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님 그 상상력 때문? 너의 그 조잘거림은 지금도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해. 난 형제가 많아서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어. 언제나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점이 많았지. 그래서 너처럼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나 봐.     


앤 궁금한 것이 있는데 넌 언제부터 길버트를 용서하고 좋아한 거야. 그 물에 빠진 날 구해줬을 때? 아님 그전부터? 길버트가 너에게 한 장난이 지나치다는 것은 나도 이해해. 그러나 길버트는 뒤에 너에게 충분히 용서를 구했잖아. 길버트랑 성적 경쟁을 하면서 서서히 좋아진 것인지 궁금해. 그건 앤 너만이 알겠지? 네가 그렇게 공부하는 것 보고 나도 공부했는데 너만큼 잘하지는 못했어. 너와 길버트를 보면서 나도 저런 남자 친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앤 너를 보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워. 삶을 관조하는 방법이라든지 평범한 속에 비범함을 찾는 법 말이야.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어.      


앤 언제나 나의 옆에 같은 모습으로 남아줘.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너를 찾을게. 상큼 발랄한 모습으로 나를 위로해 주렴. 너를 보면 언제나 힘이 나니깐. 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할게. 내가 살아오는 굽이굽이마다 앤 네가 있었어. 우린 언제나 그렇게 같이 있었던 거야. 네가 있어 난 외롭지 않았어. 나의 또 다른 분신, 나의 영원한 친구 빨강머리 앤 우리 앞으로도 영원하자. 

     

                                                                                                                 너의 영원한 벗 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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