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여서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점점 고민이나 해결해야 되는 문제들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고민의 무게도 늘어갔다. 어린 시절과 달리 실패하면 다시 복구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나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과거 내가 했던 고민들이 얼마나 가벼웠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절실하고 심각했다. 아마 지금의 나의 고민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그럴 것이라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힘이 든다.
이게 다 무슨 소용 있나 싶다가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번쩍 들기도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와 도전해야 된다는 나의 사이에서 고민도 갈등도 많다. 친했던 친구들과는 점점 관삼사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지면서 그전처럼 즐겁지도 않다. 인생은 원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과 혼자 끙끙거리고 있다.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서 저분들은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나의 앞에 수많은 과제를 던져준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은 정답이 있었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결정하기 어렵고 고민도 깊어진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전부 나의 몫인지라 가끔은 결정이 무섭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고민에 시간을 많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긴박하게 빨리 결정해야 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에라이 모르겠다 하면서 결정하기도 한다. 심사숙고한 결정이 또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아무거나 고른 선택지가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운이 좋았다고 기뻐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열과 성의를 다했지만 운이 없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올 때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멘털이 나가서 한참만에 돌아오기도 한다.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허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느껴도 밥을 먹어야 하고 회사에 출근해야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웃어야 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샤워를 해야 한다. 어릴 때처럼 울면서 침대에 누워있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는 없다. 나에게는 해야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하는 길에 사람들을 본다. 모두 휴대폰에 시선을 집중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들의 어깨 위에 삶의 무게가 보인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느껴진다. ‘젊을 때는 난 저렇게 재미없게는 안 살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힘들다고 징징거려 봤자 다들 힘들 것을 알기에 그냥 혼자서 삭히는 방법을 터득한다. 명상도 하고 템플스테이도 가고 운동도 한다. 일기도 쓰고 향초를 피우기도 한다. 족욕이나 반신욕도 하고 음악감상도 한다. 사실 이런 것이 꽤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삶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많이 내려놓게 되기도 했다. 난 언제나 나는 다를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다. 나도 그냥 평범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기는 것이 인생이고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 좋다고 보장할 수 없고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도 나쁘다고 볼 수 없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방법을 터득했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운 덕이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한다.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다시 가다듬게 된다. 삶 속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끝은 바로 죽음이다. 그것 역시 받아들이고 고민이 부질없다는 것을 각성하기도 한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많은 불안한 상상은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식사를 할 때는 ‘밥만 먹자!’, 일을 할 때는 ‘일만 하자’, 책을 읽을 때는 ‘책만 읽자!’, 자고 내일 생각하자! 이런 식이다. 이상하게 몸을 움직이고 집중할 것이 생기면 고민은 사라지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 남아있는 삶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나를 토닥거려 가면서 길을 나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