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치는 올랐는데,
왜 삶은 더 버거운지 모르겠습니다.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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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면 살수록 제 안의 능력치가 커져서, 언젠가는 삶이 편안해질 줄 알았습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분명 커지긴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에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인내심이 생겼고, 당장 제 앞가림만 급급하던 시절을 지나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심도 제법 두터워졌습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저는 분명 어릴 때보다 나아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삶의 난이도도 야속하리만큼 가파르게 높아만 갑니다. 마치 제가 레벨업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세상은 점점 더 풀기 어려운 숙제들을 제 앞에 툭툭 던져놓습니다. 예전엔 객관식 문제 정도였다면, 이제는 정답도 없는 서술형 문제들이 저를 포위해 옵니다. 매일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도록 헉헉거리며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지만, 단 한 번도 ‘쉽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능력치도 높아졌지만 난이도도 덩달아 높아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제가 체감하는 삶의 무게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말다툼 따위로 밤새 끙끙 앓던 저를 지금 생각하면 ‘겨우 그런 것으로 그렇게까지?’ 싶어 헛웃음이 나옵니다.


아마 지금 제 머리를 짓누르는 이 거대한 고민들도 먼 훗날에 보면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일일지 모릅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안을 삼아보려 해도, 당장 제 어깨를 짓누르는 현재는 늘 버겁고 힘이 듭니다. 미래의 평온함이 현재의 고통을 마취시켜 주지는 못하니까요.


잠시 평안하다 싶어 마음을 놓으면, 삶은 어김없이 저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칩니다.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문제들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가장 힘든 건 문제 그 자체보다, 그 문제 앞에서 여전히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제 자신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고, 경험도 쌓일 만큼 쌓였는데 저는 왜 여전히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걸까요.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거목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산들바람에는 의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주변을 보면 언제나 호수처럼 잠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기에 저토록 담담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의연함 곁에 서면, 작은 파도에도 배가 뒤집힐 듯 요동치는 제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해 보입니다.


"이제는 좀 덤덤해질 때도 됐잖아." "아직도 이런 일에 멘털이 무너지니?"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난의 화살이 외부의 문제보다 더 아프게 박힙니다. 저는 왜 아직도 ‘새가슴’인 채로 머물러 있는 걸까요. 작은 일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진정이 되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저를 볼 때마다 저는 제가 밉습니다. 이 두근거림이 설렘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사실이 저를 더 지치게 만듭니다.


얼마나 더 많은 경험치가 쌓여야, 얼마나 더 많은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야 저들처럼 고요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저로서는 그 경지가 영영 닿을 수 없는 먼 미래의 일, 혹은 이번 생에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져 막막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저는 흔들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중심을 잡으며 하루를 버팁니다. 어른이 되면 단단한 돌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인 채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가 마주한 진짜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흔들리는 제가 밉고, 한심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안고, 저는 또다시 숨 가쁜 내일을 맞이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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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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