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만 이토록 가혹한가."
문득 멈춰 선 길 위에서,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내 어깨 위에만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의 인생은 윤활유를 바른 듯 매끄럽게 굴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의 웃음은 가벼워 보이고, 그들의 걸음은 경쾌해 보입니다. 억울함이 울컥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해야만 겨우 현상 유지를 하는 걸까.'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는 저 유명한 사람들조차, 무대 뒤편에서는 남모를 고통과 불안에 시달린다는 사실을요.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 없고, 아픔 없는 인생 없다는 것을 수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다들 그래."라는 말로 위안을 삼아보려 하지만, 사실 그 위로가 내 살갗을 파고드는 현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합니다. 남이 암에 걸렸다고 해서 내 감기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옆에서 지켜보는 안타까움과, 직접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통증의 무게는 엄연히 다릅니다.
마치 세상이 나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습니다. 긴 줄을 섰는데 하필 내 바로 앞에서 순서가 끊길 때, 간절히 바랐던 기회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갈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주문처럼 외워보지만, 그 지나가는 과정 자체가 지옥불을 걷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것이 해결된 먼 훗날이기를, 이 지긋지긋한 터널이 끝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슬프게도 이미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법 같은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삶이 이어지는 한,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이 산다는 것의 본질임을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할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버터야 할까요? 이 서럽고 버거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게 건너가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거창한 철학이 아닌, '성실하게 살아내는 일상'에서 찾고 싶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일수록,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늪과 같아서, 가만히 누워 있을수록 우리를 더 깊은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오늘은 너무 슬프니까"라는 핑계로 하루 종일 이불속에 파묻혀 있거나, 자극적인 배달 음식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엉망진창이 된 방을 그대로 둔 채 그 속에 나를 방치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세상과 한패가 되어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의식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거칠더라도 건강한 재료로 지은 밥을 꼭꼭 씹어 먹는 일. 귀찮음을 무릅쓰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밖으로 나가 걷는 일.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개고, 먼지 쌓인 방바닥을 닦아내는 일. 그리고 내 몸을 정갈하게 씻어내는 일.
이 사소하고 지루해 보이는 행위들이 사실은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입니다. 집안을 청소하는 것은 어지러운 내 마음의 티끌을 닦아내는 의식이며, 몸을 씻는 것은 서러움으로 얼룩진 감정을 씻어내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경건한 행위입니다.
정리된 방은 마음을 조금 덜 어지럽게 하고, 제시간에 먹은 한 끼는 내일의 나에게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신호가 됩니다. 땀 한 방울은 머릿속의 소음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짧은 명상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을 다시 손에 쥐게 합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마음의 뒤죽박죽 한 실타래를 글자라는 고리에 걸어두는 일이고, 가계부를 쓰는 일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구획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을 분산시킬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뜨개질, 그림, 책, 산책, 악기, 퍼즐 같은 것들. 문제는 생각한다고 바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해결은커녕 마음만 닳습니다. 집중은 걱정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손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 눈이 한 줄을 따라가고 있을 때, 몸이 리듬을 타고 있을 때—잠깐이라도 “걱정하지 않는 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잠깐이 쌓이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한 코 한 코 정성을 다해야 하는 뜨개질, 흰 도화지를 채우는 그림, 혹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독서. 무엇이든 좋습니다. 무언가에 깊이 집중하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 뇌가 비로소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챙기며 '살아내다' 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영원할 것 같던 고통의 시간이 어느새 내 등 뒤로 흘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어서가 아닙니다. 폭풍우가 치는 동안 웅크리고 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 집의 창문을 닦고 기둥을 보수하며 버텨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편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기보다, 편해지는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뜻한 물로 씻는 10분, 창문을 여는 30초, 정성 들인 한 끼, 잠들기 전 짧은 호흡, 하루를 통째로 바꾸진 못해도 하루의 결을 바꾸는 작은 선택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정말로 “지나가 있네”를 알게 됩니다. 문제가 완전히 사라져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법을 조금 더 익혀서요. 삶이 여전히 서러워도, 그 서러움 속에서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어서요.
서러움이 밀려오는 날이면, 거창한 행복을 꿈꾸기보다 오늘의 일상을 정갈하게 가다듬어 보세요. 가계부를 적으며 숫자에 집중하고,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그릇을 닦으십시오. 그 단순하고 성실한 반복이, 당신을 가장 안전하게 내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번 지나갈 것입니다. 어찌어찌 버티며, 생각보다 강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