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발밑을 내려다보면 분명 내 두 다리로 걸어온 길인데, 고개를 들어 지평선을 보면 도무지 낯선 풍경뿐입니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키를 잡고 있는 것은 과연 나였을까요, 아니면 거대한 운명의 파도였을까요. 나의 의지로 힘껏 노를 저어왔다고 자부했던 순간조차,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해류에 휩쓸려 그저 흘러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의문이 듭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이곳이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싶은, 기막힌 우연과 필연의 조합에 멍해질 뿐입니다. 내게도 분명 다른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선택지 앞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을 택했다면, 아니 잠시 멈춰 섰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었을까요.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몽환적인 안개 속에 있어, 그곳이 꽃길이었을지 가시밭길이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손을 뻗으면 쥐고 있던 무언가를 놓아야만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그저 내가 치르지 않은 대가에 대한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길을 택했든, 인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내 발에 박힌 돌멩이가 너무 아파서, 남들이 걷는 매끄러워 보이는 길을 곁눈질해보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쉽게 걷는 것 같고, 저 길은 여기보다 덜 가파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도 그들만의 비바람이 불고, 그들만의 웅덩이가 있습니다. 거기도, 여기도, 삶이라는 무게는 공평하게 어깨를 짓누릅니다.
가장 허탈한 순간은, 촘촘하게 세워두었던 나의 계획들이 거대한 운명의 파도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때입니다. 내일은 무엇을 하고, 내년에는 어떤 모습이 되겠노라 다짐했던 그 견고한 청사진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의 급류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계획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한순간에 뒤집히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떠밀려갈 것을.
차라리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희망을 품지 않으면 절망에 베일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저 닥쳐오는 하루를 숙제하듯 받아내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운명이라 여기며 체념하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패막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닫아걸어도, 불확실함이 주는 원초적인 공포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은 언제나 사람을 가장 작고 초라하게 만듭니다.
지금 저는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 낯선 공기를 마시며, 익숙지 않은 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에서 안정을 찾고, 오래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긴장된 표정을 숨기고,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서툰 손짓을 감추며 태연한 척해야 하는 이 시간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혹은 중력이 달라진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인처럼, 모든 감각이 곤두서고 숨이 가빠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물처럼 유연한 사고와, 바람처럼 담담한 태도일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내 몸의 모양을 바꾸고, 거센 바람이 불면 잠시 눕는 법을 아는 지혜 말입니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가슴이 바로 따라주지는 않습니다. 그 유연함과 담담함이라는 경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어짐, 그리고 수없이 많은 '낯선 곳'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굳은살처럼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느끼는 이 두려움과 막막함을 너무 탓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삶이 본래 예측 불가능하기에 느끼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일 테니까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발을 내딛습니다. 나의 의지 반, 그리고 알 수 없는 운명 반이 섞여 만들어낸 이 길 위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 헛웃음이 나더라도, 낯선 풍경이 두려워 움츠러들더라도, 이것 또한 내 삶의 한 페이지임을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흐르듯, 떠밀리듯, 그러나 멈추지 않고 오늘을 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