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야라디오방송을 좋아한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라디오 DJ가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이 말한다.‘오늘 하루 참 힘드셨죠?’이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뚝뚝 눈물이 흘러내린다. 마음 깊숙이 잠자던 감정을 툭하니 건드린다. 고작 이 한마디에 눈물이 나다니... 오늘 내가 힘들었구나. 나도 돌보지 못한 마음의 감정에 미안해진다.‘미안해 나를 돌봐주지 못해서... 더 찬찬히 살펴보고 보듬어 줄게.’이렇게 위로받는다.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밤이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살아난다. 낮에 같은 말을 들었다면 눈물까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려고 누우면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차례로 떠오르면서 상념에 잠긴다. 오늘 내가 겪고 느낀 감정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한다 한들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때 나는 고독하다. 내가 느낌 감정을 오롯이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고 같이 공감하고 싶다. 가족도 친한 친구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을 깨닫고 고독을 감내해 내는 것이 바로 어른이다. 그 대체재로서 내가 선택한 것이 심야라디오방송이다.
어두운 심야시간 흘러나오는 음악에 들끓었던 감정을 다스린다. 소개되는 사연에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안도의 한숨도 쉰다. 옛날의 추억들이 하나 둘 소환되며 묵혀둔 감정들이 걷잡을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낮 동안 내면에서 꽁꽁 숨어있던 감정의 파편들이 튀어져 나와 나를 잠식한다. 희망, 기대, 슬픔, 분노, 우울, 수치, 절망 등등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복합적이다. 한없는 절망의 나락에도 빠졌다가 부푼 희망으로 설레기까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가끔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낯설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사라질까 두렵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라디오 DJ의 목소리는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하다. 조그마한 위로에도 감동받고 음악에 마음을 빼앗긴다. 신경이 쭈뼛쭈뼛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가도 스르륵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감성 충만한 심야라디오방송의 매력이다. 충성도도 높고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다.
방안 가득히 라디오 DJ 음성으로 가득 찬다. 방안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울려 퍼진다. 바로 옆에서 가수가 나만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가사가 나의 사연처럼 느껴진다. 마치 내 이야기를 듣고 만든 것처럼 말이다. 나만을 위한 노래와 이야기가 방송된다. 나를 위해 제작된 것 같다. 어쩜 내가 딱 듣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흘러나오지?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이런 촉촉한 감성들은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밤의 마법 같은 순간은 사라지고 밝고 쨍쨍한 이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한다. 연약하고 잡으면 으스러질 것 같이 말랑말랑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차갑고 전투적인 모습의 나를 본다. 낮의 나에게 촉촉한 감성은 힘들다.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밤에 하나둘씩 꺼내어 가만히 들여다본다. 심야라디오방송을 들으면서 잠자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밤! 심야라디오방송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