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이 자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저도 더 예쁜 모습으로 올리면 좋겠지만, 몸 상태의 작은 변화도 얼굴에서 표현이 되는 나이가 사실인데 어쩌겠나.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이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엄마이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 다만 저는 그녀와 다른 길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 것일 뿐이지 평소 저는 제 나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 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나’, 30대의 여성으로서의 저의 삶을, 그리고 저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 -임수정 인스타그램
배우 임수정이 SNS에 화장기 없는 얼굴의 사진을 올리자 늙어 보인다는 반응에 대한 답글 중 일부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원래도 배우 임수정을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악플에 대한 이렇게 솔직하고 통쾌한 대응을 본 적이 없다. 예뻐야 된다는 여배우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말이다. 물론 화장기 없는 그녀의 모습도 역시 아름다웠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가혹하다. 여성스럽다가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로 귀결된다. 뚱뚱하고 못생기면 미련하다 게으르다까지로 변질된다. 이번에 개봉한 겨울 왕국 2에서 엘사의 레깅스 복장에 대한 기사를 봤다. 캐릭터는 진취적으로 변했으나 화장이나 복장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전통적 가치를 심어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닌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는 늘 타박이다.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면 예의가 없나? 엄마랑 말싸움하기 싫어서 관두었지만 매일 팩을 하라고 하고 살찌면 다이어트해라 늘 잔소리다. 엄마는 결혼에 관심 없는 나를 제쳐두고 혹시라도 모를 인연을 위해 언제라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하시는 것 같다. 내가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직도 전통적 남녀 가치관에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있다. 내가 특이 한 것인지 모르지만 난 데이트할 때 항상 더치페이를 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사준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도 생수통은 남직원에게 절대 부탁하지 않고 내가 직접 간다. 비품이 떨어지면 a4용지 두 박스를 들고 옮기기도 한다. 집에 큰 액자는 내 손으로 못을 치고 달았다. 엄청 무거운 액자를 벽에 달았을 때 난 느꼈다. 난 더 이상 난 남자가 필요 없구나. 이런 것도 내 혼자 해 내는데 왜 필요하지? 커튼은 드릴 공구를 사서 달았고 침대 교체하고 프레임 옮기는 것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했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여자는 남자보다 더 기계를 잘 다루고 남자친구가 회사 다니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내가 돈 벌어 올 테니 넌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여자다. 이상형이 집에서 조신하고 살림 잘하는 남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못 믿는 눈치다.
남이 사준 것 얻어먹을 때 보다 내가 돈 벌어서 누구를 사 줄 때가 난 더 행복하다. 내 능력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아마 전통적인 남녀 프레임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럴 것이다. 이러면 안 돼. 남자가 싫어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고 연봉이 작은 남자 앞에서도 그들이 주눅 들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분통터졌다. 왜 내가 그들을 배려해야 되지? 잘난 척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떳떳이 밝힐 수 없을까? 능력 있는 여자는 결혼하기 힘들 거라는 말이 비아냥인지 들을 때마다 아리송했다. 그런 말로 나의 업적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의 태도가 정말이지 싫었다. 전통적인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바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현재의 나를 과거보다 더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일에 과거보다 애쓰지 않는다. 임수정 배우도 어쩜 나이가 들어 그런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이게 가장 큰 수확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나랑 맞지 않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 혼자라도 좋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