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하는 삶

by 윤슬


법칙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나에게 집중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다. 완벽히 이 삶을 살고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남과의 거리두기는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이루어야지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쉽게 이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다. 수많은 밤을 갈등과 번뇌의 과정이 있었다. 나도 남들처럼 결혼해야 한다. 승진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등에 사로잡혀 나를 고통에 밀어 넣었다. 마음에도 들지 않는 남자하고 어떻게든 잘 해보고자 애를 쓴 날도 있었고 또래 동기, 친구들의 직급, 연봉, 재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친구들하고 모임에서 조금이라도 내가 모자람이 드러나면 자존심이 상했다.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을 아니었다. 나도 주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행복하지만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주는 기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예뻐지고 싶었다. 친구, 선생님, 이성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반에서 예쁜 아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거울을 보고 난 왜 예쁘지 않을까? 원망했다. 남자아이들의 고백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남자한테 고백받고 싶었다. 처음 남자에게 고백받았을 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은 왜 나한테 고백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난 예쁘지도 않은데 하면서 말이다. 나보고 누가 예쁘다고 했을 때도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나도 사랑받을 만큼 예쁘다고 생각이 든 것은 한참 후에 일이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예쁘지 않은 내가 인정받기 위한 차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선생님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칭찬과 부러움을 사자 나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사회에 나와서 흔히 말하는 좋은 회사에 입사하여 부모님의 자랑이 되는 것이 아무 곳에 가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나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직장에서 심한 매너리즘과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껍데기를 버린 나는 참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회사라는 간판을 떼면 경쟁력이 없고 무능하다 여겨졌다. 그때부터인가 나는 사람들을 만나도 직장이나 나이 같은 나에게 선입견을 줄 만한 것을 되도록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어떨까? 좀 특이하다 혹은 드세다고 여기려나? 이런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받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더 이상 남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해 하지 않는다.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부모님에 의해 결정하지도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결정하지도 않기로 했다. 실패에 대해서도 타인에게 쿨하게 오픈하고 쉽게 넘어가기로 했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지만 가끔 흔들릴 때도 있다. 결혼하지 않는 나를 두고 어르신이 불효를 행하고 있다고 하신 적도 있다. 엄마의 탄식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난 누구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위한 존재이다.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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