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회사 업무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고 삶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왜 사는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거의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집, 회사만 왔다 갔다 하면서 내면의 나로 숨어들었다. 회사는 겨우겨우 다녔다는 말이 맞다. 사실 그 상태 다닌 것도 용하다. 현실적으로 달리 도리가 없었기에 대안은 없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졌고 무의미해졌다.
근 일 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문투성이인 나의 삶에 답을 찾을 수도 없었고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 년 동안 나의 생각은 처음이랑 단 한 보도 나아가지 못했다. 생각다 못해 그냥 아무 거나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별거 아니고 조그마한 거라도 말이다. 해보고 그리고 생각하자. 생각하고 행동하지 말고...
일단 맨 처음 한 것은 일기 쓰기였다. 가끔 쓰기는 했는데 매일 꼬박꼬박 쓰기로 했다. 회사에 30분 먼저 출근했다. 나만의 비공개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에다가 썼다. 처음에는 쓸 말이 없었다. 먼저 하루 일과를 나열식으로 기록했다. 뭘 했고 뭘 먹었고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러다가 차츰 나의 생각과 기분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고 어떤 글을 읽었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기를 쓰자 생각이 맑아지고 정리되는 것 같았다. 차츰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한 것은 걷기였다. 운동을 싫어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못해서 싫어하는 것인지 싫어해서 못하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둘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결론은 운동을 안 하고 있는 상태였다. 고민 끝에 제일 쉬운 걷기로 결정했다. 집, 회사를 오가면서 걸어 다니기로 말이다. 걸을 때 몸이 이완되어서 기분도 좋아졌다. 괴롭고 흥분되던 마음도 가라앉고 새로운 영감도 많이 떠올랐다. 매일 목표 걸음 만보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혼자 하면 의지가 약해 질까 봐 모임도 가입했다. 확실히 같이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같이 걸을 때도 있었고 매일 운동 상황을 인증해서 서로를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거라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 1회 글쓰기 모임에 눈에 띄었다. 이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어있던 블로그에 글을 썼다. 하기로 하긴 했는데 뭘 써야 할지 난감했다. 다른 사람들 글을 보면서 참조했다. 다들 브런치 작가여서 나도 도전하기로 했다. 4번의 낙방 끝에 겨우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작은 성과였지만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시도를 하고 거기서 성공을 하게 되면 용기를 얻는다. 그런 다음 합평까지 하는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돌아가면서 합평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고 좋은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도전했던 것에 작은 성과들이 보이고 끈기 있게 미션을 완수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를 믿고 점점 더 많은 도전과 시도를 해 보았다. 생전 처음 DJ 수업도 들어보고 내가 모임을 주관도 해보았다. 실패에 관대해지고 용감해져 갔다. 경험들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새로운 꿈, 희망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매일 새로워지고 나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흥분되고 흥미로운 경험들이었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일 년이 지났다. 각각의 일 년! 같은 시간을 아주 다르게 보냈다. 내면의 자신에 빠져있던 일 년과 밖에서 끊임없이 나를 시험했던 일 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도전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 바쁘게 보내는 중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나에게 묻는다. 요즘 어때? 너의 기분은? 괜찮아?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각각의 일 년이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다. 나를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난 또 주저앉을 것이고 또 도전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