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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17. 2019

우리는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노인과 바다]

늙은 어부의 험난한 고기잡이 여정을 담은 이야기 ‘노인과 바다’. 어릴 적 다락방에서 숨죽여 읽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노인이 큰 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고기를 잡는데 성공하지만 상어 떼들에게 고기가 잡혀 먹는 부분에서 허탈했다. 거의 상어에게 여기저기 살이 뜯겨 뼈만 남아 돌아가는 노인이 안쓰러웠고 나라면 절대 그런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고기와의 사투 과정 그리고 상어 떼와의 힘겨운 싸움이 어릴 때 읽었을 때와 다름없이 나에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노인은 왜 바다로 나갔을까? 한때 제법 큰 고기도 잡았고 힘들게 바다로 나갈 필요는 없는 데 말이다. 그냥 가만히 노후를 보내면서 고기를 잡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도 한때 그랬지.’하며 거드름을 피우면 살면 될 터인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한다. ‘나 아직 안 죽었어.’라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다. 힘들게 잡은 고기가 상어들에게 이리저리 뜯겨져 나갈 때 노인은 격노했고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그런 행동들이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요 부분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돈다. 어부인 노인도 노쇠해진 체력 탓에 얼마나 큰 고기를 잡았는지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은 다시 한번 자신이 주목받기를 원했고 이것이 허세가 아니라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상어에게 먹혀 뼈만 남은 고기를 끝내 버리지 않고 배에 달고 집으로 오는 고집일 것이다. 자봐 나 이렇게 큰 고기를 잡았다고... 대중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에서 인간의 질긴 생명력을 느꼈다. 탑골공원이나 파고다 공원을 비출 때면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이 떠온다. 비록 세월에 의해 육신은 늙었지만 그들도 한때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태극기 부대니 꼰대니 하면서 진절머리를 쳐도 우리도 늙고 나중에 젊은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부를지 알 수가 없다. 종로 쪽으로 나가서 가끔 태극기 부대 사람들을 본다. ‘박근혜 사면’이라든지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치는 분들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물론 가끔 젊은 사람도 본다. 그분들은 전에 없이 진지하고 열정이 넘쳐 보인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주장이 아니라 열정에 넘쳐 무언가를 할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체만 남은 고기를 고집스럽게 매달고 있던 노인의 고집과 닮아 보인다.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에서 관광지를 보는데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분들이 아니 노인에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다음에 보지 모...‘ 이렇게 쉽게 생각하던 것도 노인에게는 시간의 의미가 달리 느꼈질 수도 있다.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신체도 정신도 점점 힘들어짐을 느끼는 것이다.


노인은 고기를 잡고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도 즐기지 못한 체 깊은 잠에 빠졌다. 고기를 잡아오면서 수많이 상상하고 즐겼을 것이다. 아직 그렇게 큰 고기를 잡을 만큼의 체력이 있고 아마 한 두 번쯤 더 그런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노인은 피곤하지만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늙어서 서글픈 것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진다는 느낌이 아닐까?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 늙음을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마음은 아직 너무 젊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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