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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7. 2019

나를 파는 행위...


인간은 상품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팔면서 스스로를 상품으로 느낀다. 
육체노동자는 육체의 힘을 팔고 상인과 의사, 
사무직 노동자는 자신의 ‘인격’을 판다. 
생산물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면 ‘하나의 인격’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라이너 풍크, 장혜경 저


형제가 많은 나는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할 때면 일장 연설을 해야 했다. 그냥 말하면 들어줄 리 없기에 거의 연기하는 수준의 애걸과 또박또박 논리정연한 말을 해야 했다.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미리 몇 주 전부터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먼저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위한 밑밥을 몇 가지 준비하고 대망의 본선을 기다린다. 가정이라는 따뜻한 공간에서도 여러 형제 중에서 한정된 재화를 얻기 위한 경쟁을 치열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존재한다.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파는 행위를 했다.


대학 졸업반 시절 무수히 쓴 자소서는 내가 어떤 상품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열심히 회사, 고용주에게 어필하는 종이였다. 장점은 더 부각시키고 단점도 장점처럼 포장하여 그럴싸한 문구를 만들어 내다. 면접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재능이 있으며 그 회사에 많은 기여할 사람인지 눈에 거슬리게 튀지 않는 선에서 어필해야 했다. 수백 명 중에 내가 선택되기 위해서는 좀 다르지만 그렇다고 모나지도 않아야 했다. 남녀관계에서는 더욱 치열해진다. 소개팅에서는 나의 매력은 이러하며 나와 연인이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주지시킨다. 매력적으로 보일 옷을 입고 향수도 뿌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든 조건에서든 내면에서든 모든 방향에서 나를 어필을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치열하게 내가 상품이 되는 자리였다.


난 얼마짜리 인간일까? 나라는 상품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쭉 나를 팔아왔고 가끔 속여도 보고 실제 그런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했다. 과대평가되어 있는지 과소평가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내가 너무 완벽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나는 연인에게서도 과도하게 나를 포장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긴장하고 있고 좋은 면만 보이려고 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해야 되는데 데이트 중에도 집에 가서 혼자 쉬고 싶은 적이 많았다. 연인으로서 내 상품은 적어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서 내가 먼저 나가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압박하며 상품성을 높이려 하는 것일까? 처음 보는 사람과 식사 자리가 여전히 불편하고 타인과 있을 때 긴장하는 내가 안쓰럽게 여겨질 때도 많다. 이게 체화되어 본연의 모습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가족, 친구, 연인 등 모든 관계에서 나를 포장했다. 그래서 나의 상품가치가 높아졌는가? 사실 더 높아지길 바라는 게 내 솔직한 바람이다. 내가 불편해도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다. 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해야겠지만 타인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고 기뻐하는 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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