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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16. 2019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전문성 즉 업무 노하우가 생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매너리즘에 빠지게도 된다. 반복되는 업무에 지치고 무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서 저 부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도 많다. 오래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있을까? 열정 혹은 소명의식 같은 것이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은 아닐까? 한다.


국선 변호사! 자신의 일을 하면서 겪은 일을 써 내려간 글에서 차가운 법리보다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다. 의뢰인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그것이다. 그들이 놓인 상황에 가슴 아파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에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에 있어 이렇게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반복되는 업무에 단순하게 복사 붙여넣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남이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내 것은 시시하고 초라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남의 직업 그것도 생소한 직업이 무엇을 하는지는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다. 게다가 신문에서 언 듯 들었지만 잘은 모르는 국선 변호사의 이야기라니 일단은 구미가 당긴다.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기거나 또는 미래를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국선 변호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고였다. 거기서 주인공이 국선 변호사로 나온다. 고군분투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에서 멋지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드라마에서 멜로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여주인공이 사건 문서를 보면서 일하는 장면도 많이 나와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작가와 그 여주인공을 겹쳐서 생각했다.


나는 변호사를 수임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변호사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를 찾아갈 정도면 오죽 답답해서 갔을 텐데 같이 마음 아파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신경 쓰는 변호사가 있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련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내가 그전에 가졌던 편견을 깼다. 너무도 악용될 소지가 많아서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그렇다. 법을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이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읽으면서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은 직장인으로서 업무를 대하는 자세 면에서도 본받을 만하고 잘 몰랐던 국선 변호사의 업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불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독립적인 스토리가 있어 읽는 재미를 준다. 하나하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하다. 추운 겨울 먼가 가슴이 몽글몽글 거리고 싶고 아직 세상은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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