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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17. 201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건저올려진 아이 테레사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 건져 올린 아이처럼 보였다.”     


토마스가 테레사를 보고 느낀 이 감정! 먼가 알 것도 같고 잘 모를 것도 같은 이 말! 토마스에게 테레사는 어떤 존재일까? 토마스는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가지지만 테레사를 절대 떠나지는 않는다. 토마스에게 테레사는 다른 여자들과 의미가 다르다. 테레사에게 어떤 의무가 있어 보인다. 건져 올린 아이처럼 그녀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것이 긴 세월 토마스와 테레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다른 여자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결코 테레사를 떠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마스가 테레사에게 가지는 태도는 독특하고 흥미롭다. 그저 그런 바람둥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책임지는 성인다운 자세를 보인다. 테레사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토마스는 부인이 있고 애인이 있음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난봉꾼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테레사에게 느끼는 감정과 태도는 여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고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성욕으로 충만한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테레사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자들보다 우위를 점한다. 토마스는 심지어 생활패턴, 잠자리 습관 등도 바꾼다. 토마스가 테레사에게 느끼는 감정은 숭고하고 고차원적이다. 테레사의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처음 만날 때 들고 있던 책? 아니면 테레사가 곤히 잠든 모습에서 발견한 뜻밖에 깨달음? 어찌 되었든 둘의 관계는 복잡하고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토마스가 테레사에게 느낀 이 감정에 집중해 보면 테레사에게 어떤 영적이고 보호해야 하는 인격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로 표현되는 테레사에게 어떤 의무감이 있는 것이다. 건져 올린 아이를 잘 양육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테레사의 어떤 점이 버려진 아이로 느끼게 했을까? 테레사의 힘든 유년시절일까? 토마스를 만났을 때 테레사에게 어떤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토마스와 연인이 된 테레사는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다른 여자를 여전히 만나는 것을 알고도 토마스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초창기 토마스에게서 경제적 지원이 있었지만 테레사는 젊고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 토마스가 테레사는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테레사가 토마스를 대하는 태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토마스는 부인이 있고 애인이 있지만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것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테레사 역시 토마스의 바람에 대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신파를 볼 수 없는 점이 흥미롭다. 


토마스와 테레사를 보고 있자면 세상살이 지지고 볶은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 일들로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쿨한 삶의 태도를 지닌다. 토마스가 바람을 피워도 크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고 테레사가 토마스의 외도를 방관하는 것에 대해서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신기한 점이다. 무척이나 건조한 듯 이야기하지만 묘하게 설득당한다. 나도 만약 어떤 남자에게 건져 올려진 아이 같이 느껴진다면 그와 나는 어떤 관계가 될까? 토마스와 테레사의 관계와 유사할까? 둘 사이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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