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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11. 2020

벤츠 타는 여자가 되고 싶다!

벤츠 타는 남자를 만나기보다 직접 벤츠 타는 여자가 되고 싶다.


벤츠 타는 남자를 만나라. 난 이 말이 너무 싫다. 왜 벤츠 타는 남자를 만나야 하는가? 내가 바로 벤츠 타는 여자가 되어야지 말이다. 내가 이런 사고를 하게 된 데에는 태생적인 이유가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딸이라는 이유로 조부모 및 부모님 등 주위의 실망은 대단하였다. 장손인 아버지는 아들을 바라셨고 셋째 딸인 나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열이 받으셔서 ‘선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호적에 올리셨고 다음에는 꼭 아들을 바라셨다. 아버지께서 후에 할아버지가 올린 이름의 나를 사망신고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출생신고하셨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호적등본을 떼면 선명하게 사망이라고 줄이 그어진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호적등본을 나에게 보며 주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어린 마음이지만 내가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시골에 가면 나에게 선남이라고 친척들이 부르곤 했는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나를 그렇게 이름 지은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쳤다. 아들보다 더 나은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낳고 실망한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에게 보란 듯이 나를 내보이고 싶었다. 어릴 때 조그마한 체구에도 남자애들하고 어울려 놀았는데 아마 내가 같은 남자라면 한 대 때렸겠지만 내가 여자라서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있으면 그런 남자애들을 약 올리고 놀려댔다. “왜 한 대 치려고? 쳐봐. 내가 여자 때렸다고 동네방네 다 말하고 다닐 거다."이러면서 약이 올라 부들부들 떠는 남자애의 부아를 더 치밀어 오르게 했다.


남자들은 수학, 과학을 잘하지만 여자는 못한다는 말을 듣자 ‘그래? 어디 한번 볼까?’ 허구한 날 수학만 파고들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여자애가 수학을 잘하네” 이런 말을 듣자 어깨가 으슥 거리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때는 ‘난 다른 여자들 애들하고 달라’ 이런 나만의 자긍심이 있었다. 공부를 해서 좋아진 것인지 좋아해서 공부를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공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남자애들하고 정식으로 경쟁해서 이기고 싶었다. 남자보다 더 잘하는 여자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여자인데 이런 것 아시네요?”, “여자인데 이러세요?” 이런 말이 나를 더욱 특별하다. 다르다 여기게 했는지도 모른다. 잘난 남자, 좋은 남자 만나야 된다는 수동적인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잘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남자 만나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남자에게서도 여자에게서도 둘 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삶은 권력에의 의지다.


니체의 말에게서 내가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난 관계에서 내가 주도하고 싶다. 즉 내가 권력을 가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얻어먹는 것보다 내가 사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좋다. 권력 힘을 가지는 것이 확실히 더 행복하다. 


그나저나 난 언제쯤 벤츠를 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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