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까지 시나리오 아이템 찾아서 오세요!"
지난주에 시나리오 아이템을 작가님에게 장렬히 까이고 다음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여긴 무조건 쓰는 시스템이 아니라 일단 1분 아이템에서 패스되어야 다음 단계 3장 트리트먼트 그것도 패스해야 10장 트리트먼트로 발전시키고 그다음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다. 작가님의 생각은 1분 아이템으로 재미없으면 시나리오 써봤자 그것 역시 재미없다고 하신다. 맞는 말 같다.
'이번에는 뭘 쓴담?'
아이디어를 끄적여 놓은 메모장을 뒤진다. 여기서 뭐 쓸 만한 것은 없을까? 태극기부대, 일베, 과거청산, 전두환, 진보, 보수 등등 그간 내가 사회면에서 모아 놓은 기사 링크들과 쓰면 좋을 것에 대한 간략한 메모들의 리스트가 보였다.
종로에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갔다. 광화문에 도착하니 집회가 있어 버스가 나가질 않는다. 창밖을 보니 태극기부대다. 나이 드신 분들 열렬히 뭔가를 주장하시고 환호한다. 의견을 떠나 뭔가 생기 있어 보인다. 탑골공원에서 장기두는 모습하고 딴판이다. 왜 저럴까? 갑자기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버스에서 내려 그분들을 자세히 본다. 거의 가까이 다가가서 휴대폰 보는 척 훔쳐본다.
"정부에서 하는 말 다 가짜야. 여기 이거 보라고..."
그분들이 모여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데 보수 관련 유튜브 채널인 듯하다. 저런 채널로 여론이 확산되고 수렴되는 모양이었다. 발언하는 연사에 꽤 어린 20대 초반 남자가 연설을 한다. 고래고래 정부 비판과 박근혜 찬양을 하기 시작한다.
'어린 학생들 중에도 보수가 있구나'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집에 와서 태극기 부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가입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인물이 발견되었다. 군 전역 후 태극기 부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셨다. 다부진 인상에 고집이 세어 보인다. 얼굴만 봐도 ‘내 말이 맞다’ ‘latte is horse’를 외칠 실 분 같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주장에는 어르신들이 말씀하신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 우리의 희생으로 너희가 이만큼 사는 거다. 등등 말이다. 태극기 부대와 나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 겹친다. 그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옆에 있다.
난 궁덕후에 한복덕후라서 문화해설사 수업도 두 단체에서 들어 수료했다. 역사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서 젊은 친구들이 역사에 관심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인 친구도 애들이 역사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한단다. 문화해설사 수업 들을 때 역사 관련 정보는 공증된 단체 사이트에서 조사하라고 했다. 인터넷에 질문하면 거의 초등학생들이 댓글 달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많단다. 한 번은 역사학과 학생에게 중국어 과외 받은 적이 있다. 친해져서 내가 왜 역사학과 갔는지 물었다. 그 학생은 비록 취업에는 불리하지만 역사학과를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어떤 것을 선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그것이 선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악을 저지른 것이 되는데....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난 보수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정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차라리 외부를 부정하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현재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세대갈등을 취합하여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었다.
제목 : 한국정의구현단
강남에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도 잘하는 민혁은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진보 사학자 성민의 유튜브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별 비전 없는 성민이 있는 대학교 역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진 민혁은 성민이 수장으로 있는 비밀 진보단체 한국정의구현단에 들어간다. 비밀 진보단체에서는 친일파나 5.18민주화운동의 주모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처단하고 민혁은 점점 핵심 조직원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러던 중 민혁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처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내고 퇴역하신 존경하던 할아버지는 실제 하나회 일원이었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고 현재는 태극기부대 핵심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는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민혁이 누리는 모든 안락과 편안히 할아버지에 기인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할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하지 못하고 조직에서는 사상을 의심받는다. 성민으로부터 가족 앞에 흔들리지 말고 조직과 앞으로 나아질 세상만 생각하라는 조언을 듣고 조직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민혁은 할아버지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죽은 사람들의 후손들에게 데리고 가서 아직도 힘겹게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며 할아버지가 변화하기를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국가를 위한 길이였음을 강조하며 끝내 거부하던 할아버지는 후손들의 손녀에게 조심스런 손길을 내밀고 민혁은 조직을 나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보기로 한다.
두근두근 아이템이 통과되길 바라면 과제를 제출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하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아요. 그러나 10년 뒤에는 나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아이템은 킵하고 다음 주 다른 아이템을 내세요!"
또 장렬히 전사! 이건 나중에 써 봐야겠다. 다음 아이템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