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는 소나기가 온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태연히 한강을 걷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는 걷기를 좀 했을까? 처음에는 빗방울이 약간 떨어지더니 이내 굵게 떨어졌다. 우리 내 일상이 그러 하듯이 예기치 못한 복병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이런 갑작스런 자연 앞에서도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비를 피해 서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웅성웅성 거리면서 비가 언제 그칠지 의견을 나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늘의 뜻인 것을...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돈을 모아두면 어느 샌가 돈 쓸 일이 생기고 느닷없이 무슨 일인가 발생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는 운명론자가 되곤 한다. 다 정해져 있었던 것인가? 이러려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렇게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다가올 미래가 두렵기도 한다.
내가 아웅다웅 열심히 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다 아무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삶의 허무주의가 느껴진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여주인공이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난 곳에서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탄해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많고 많은 우주 속에 우리네 이런 일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갑작스런 소나기 앞에서도 이렇게 속수무책인 인간인데 하물며 다른 일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을 때 마다 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겸손해 진다. 물론 대지진 같은 대 재앙에는 자연을 원망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과거에도 계속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은 거대한 자연을 극복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나는 가끔 이런 일을 겪으면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 내 마음가는대로 살아 보자라는 마음이 많이 든다. 그러나 이내 내가 용기가 부족하거니와 현실적인 문제들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가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나의 용기 없음에 한탄한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라.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 이 말은 여러 매체에서 들은 말이다. 간단한 원리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쓰고 그래도 이행하는 것이다. 난 아직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내가 너무 원하는 것이 많아서 다 쓰지 못 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하는 약간의 반감도 작용했다. 버킷리스트를 행하면서 사는 삶만이 바람직한 삶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리스트에 적힌 것을 다 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 행복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진짜 원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는가? 원하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내 고민을 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척척 버킷리스트를 써내려 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아직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만나면 나는 뭔가 부담스럽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해야 되나? 이런 마음으로 마음이 무겁다. 마치 내 삶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쏟아져 나오는 열정도 나에게는 너무 뜨겁다. 내가 너무 차가운가? 그런 생각도 들지만 나의 방식으로 뜨거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맞으면서 사람과 자연 그리고 나아가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미궁에 있는 나의 삶은 어떻게 될지. 나도 좀 더 용기를 내어 볼 수 있을지. 안정지향적인 삶만을 추구해 온 내 삶에도 조그마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 소나기는 언제 그랬나는 듯이 금방 그쳤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