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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3. 2021

타인에 대한 연민

두려움은 이성적 사고를 막고 희망을 독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방해한다.

→ 두려움 감정에 대한 특징.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는 이들의 미래를 두려워한다. 자식 세대가 자신보다 더 성공하고 부유해질 거라는 희망, 즉 아메리칸 드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고 두려워한다.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 듯...


하위 중산층의 수입 부진, 건강 악화와 수명 단축, 취업 시 대학 학위가 더 중요해진 시점에서의 고등 교육비 증가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로 인한 것이다. 실질적인 문제들은 늘 해결하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어렵고 기나긴 연구와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와 같은 공포와 무력감은 이민자, 소수 인종, 여성들과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한 비난, 혹은 ‘타자화othering’로 쉽게 전환된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부유한 엘리트들이 나라를 독점했다는 식이다.

→ 문제를 외부집단에게 돌리는 일은 흔하다.


세계화와 자동화가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 끼친 심각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람들은 삶의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대면하기보다 절대자인 악당에게 매달리거나 환상을 품는다. 우리가 벽을 세워 ‘그들’을 막을 수 있었다면, 혹은 ‘그들’을 굴종하는 자리에 묶어놓을 수 있었다면, 긍지를 되찾고 남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이렇게 두려움은 유용한 분석 대신 공격적인 타자화 전략으로 이어진다.

→ 어떻게 문자를 타자화 시키는지... 악을 만드는 것이 더 쉽다.


첫째, 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국 사회는 결코,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 장기간의 노력과 협력, 희망과 연대로 가능한, 여전히 꿈틀거리는 열망이자 과정일 뿐이다.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은 한 번도 현실에서 온전히 존재한 적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현실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우리 나라도...


두려워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라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특히 두려움이 유전적·일상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이며, 분노와 혐오와 같은 감정으로 전염될 때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두려움, 분노, 혐오의 감정이 어떻게 민주주의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 혐오는 보통 성차별주의에 뿌리를 두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로 징벌적 분노, 성적 욕망, 양립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혐오, 여성들의 경쟁력 상승에 대한 시기에서 비롯되는 유독한 감정이다.

→ 여성 혐오에 대한 새로운 해석!


악몽 속에서 종종 악당이나 괴물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더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증오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무력감!


루크레티우스도 말했듯이 고통의 세계는 동시에 기쁨의 세계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이 그것을 제공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 타인이 해주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부리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너무 약하기 때문에 통치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도움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기에 명령과 위협을 통해서만, 타인이 제공하는 숭고한 사랑을 착취함으로써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식...


감정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동물적 취약성과, 스스로는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외부 사물에 대한 의존성과 애착을 동시에 드러낸다.

→ 감정에 대해서...


측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누군가 고통받고 있는데 그 고통은 좋지 않은 것이며 고통이 사라지면 상대가 편해질 것이라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 측은함이란 감정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곧 닥칠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일에 대한 괴로움과 이를 물리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의 결합이 두려움이라고 정의했다.

→ 두려움의 정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요구 이상으로 타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능력,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할지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노예가 아닌 분리된 삶을 허락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사랑에 대해...


그들은 불멸도 두려움을 없애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도 한 가지는 알았다. 주위에 빛과 행복이 넘쳐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삶에 암흑처럼 번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대중의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일 경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만 타인의 고통이 집단 혹은 국가적 문제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 불타는 보복 욕구를 포함하기도 한다.

→ 분노가 잘 못 이용되면 위험하다.


모든 정치적 분노는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루크레티우스도 말했다.

→ 두려움에 대해...


우리가 무력하지 않다면 원하는 것을 직접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무력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의지해야 한다. 타인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늘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그때 우리는 문제의 ‘장본인’을 파악하고 비난한다.

→ 무섭고 어렵다.


*총평

타인에 대한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기에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애적이다. 왠지 모를 두려움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여겨진다. 죽음과 미래의 불확실은 인간을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다. 이 감정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 감정이 나를 좀먹지 않게 노력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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